캐나다에서 한국 오기 위해 음식점'알바' … 택시는 엄두도 못내 월셋집서 스타 꿈꾸며'살과의 전쟁' … 박수칠때 과감히 떠났죠~
▲ 최여진의 목표는 배우였다. 모델은 그 길로 가는 징검다리였고. 결국 꿈을 이뤘다. 하지만, 그녀는 패션쇼의 매력에 빠져 지금도 워킹을 자청한다.
배우 최여진은 모델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배우를 꿈꾸다 패션모델을 징검다리 삼았고, 계획대로 배우가 됐다. 중1 때 캐나다로 유학 가면서 꿈이 멀어지는 듯했으나, 한참만에 기회가 찾아왔다.
토론토 조지브라운시립대에 다니던 2001년 슈퍼엘리트모델 선발대회 캐나다 예선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도전장을 냈다. 가뿐하게 예선을 통과하고 미국에서 열린 해외결선에서 3위에 올라 한국 본선에 출전했다. 최종 결과는 낙방. 한데 눈여겨 본 사람이 많았는지 스파(SFAA)컬렉션이라는 초대형 패션쇼의 오디션에 참가하라는 전갈이 왔고, 일이 잘 풀려 그 꿈같은 무대에 서면서 큰 결정을 내렸다.
'한국에 다시 오자. 그래서 모델로 활동하며 얼굴도 알리고 커리어도 쌓은 뒤 배우가 되자.'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한국행 경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에 다시 뛰어들었다. 이번엔 토론토 다운타운의 일식집이었다.
"점심때만 운영하는 음식점이었는데 일이 고되고 엄했어요. 눈물 콧물 쏟아가며 일을 배웠고, 숨 쉴 틈도 없이 땀 줄줄 흘려가며 뛰고 또 뛰었죠. 도시락을 한 손에 다섯 개씩 들기도 했어요."
꼬박 3개월을 뛰어 비행기 티켓과 현금 100만원을 손에 쥐었다.
"대뜸 엄마한테 한국 간다고 통보하고는 무작정 비행기를 탔죠. 무슨 계약이 돼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받아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무모하게 덤빈 거죠. 느낌이 가야 할 것 같았어요. 이 기회 놓치면 평생 알바나 하고 말 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요."
무대에 한 번 서 본 경력 때문인지 모델라인과 계약이 됐고, 고생길로 접어들었다. 작은 키(1m74) 때문에 고민하다가 계약할 때 슬그머니 2㎝를 얹었다. 전 재산이 100만원이고, 그마저도 조금씩 갉아먹어 들어가니 어금니 물고 아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디자이너들 작업실을 찾아갈 때 택시는 엄두도 못 냈다.
"솔직히 자존심 많이 상했죠. 남들은 택시 타고 10분 만에 가는 길을 저는 전철 갈아타며 1시간씩 움직였으니까요. 선생님들 작업실은 왜 그렇게 구석진 곳에들 있는지…. 골목골목 헤매기도 많이 헤맸고, 하이힐 신고 언덕길도 수없이 오르내렸어요."
초년병 시절 무대에 한 번 서면 10만원을 받았다. 통장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그 10만원이 다시 숨통을 틔워주곤 했다. 착하고 독하게 뛰다 보니 회사의 신임을 받았고, 무대에 설 기회도 많이 얻었다. 대신 동료의 시기와 질투를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배우 지망생이라는 이유로 '어차피 떠날 애가 남의 밥그릇 축낸다'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그래도 1년 반 만에 서울 역삼동에 월세 60만원짜리 방을 얻었고, 2년 반 만에 SUV 차량을 손에 넣었다. 비록 할부였지만.
"바닥에서 시작해 성공한 거죠. 그래서 요즘도 그래요. '나 자수성가한 여자야'라고."
패션모델의 마지노선은 44사이즈. 큰 키에도 40㎏대 후반은 유지해야 한다. 게다가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선 광대뼈까지 불거져야 한다. 사정이 그러하니 다른 모델들처럼 살과의 전쟁도 벌여 봤다.
"볼 살 많다고 캐스팅에서 많이 잘렸어요. 그래서 다이어트를 했죠. 이틀에 한 끼만 먹고 두 달 반을 버텼더니 뼈만 남은 몸에서 다시 5㎏이 빠지더라고요. 음식만 끊은 게 아니고 사람까지 끊었어요. 만나면 먹어야 하니까요. 나중에는 거식증 초기 단계까지 가더라고요. 밥 냄새가 싫고, 고기 냄새가 역겹고…. 그러니 부작용이 없을 수가 없죠. 어지러웠고, 요요현상도 생겼어요."
몸매 관리를 위해 먹고 토하는 모델도 많은데 상당수가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한다고 한다. 문제는 죽을 고생을 해도 평생직업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20이 정년'이란 말까지 나오니 말 다했다.
최여진은 2004년이 되면서 돌연 모델 세계를 뛰쳐나왔다. '무작정 무모하게' 저지르고 보는 병이 도진 것이다. 어려운 과정 다 견디고 막 최고의 모델이 된 시점이었다. 아무리 '박수 칠 때 떠나라'고는 하지만, 시기적으로 결코 쉽잖은 결정임은 틀림없다. 더 이상 안주하면 배우의 꿈은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해 8월 KBS 2TV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캐스팅되면서 꿈을 이뤘다. 개성 있는 마스크에 연기력까지 입증하자 영화와 드라마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투명인간 최장수', '외과의사 봉달희', '황금신부' 같은 작품들이 이어졌고, 하나같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