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나미 153
지금은 각종 다양한 볼펜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와 수퍼에 가서 마음에 드는 것 하나 고르기도 정말 헷갈릴 정도로 너무나 많은 종류와 디자인들이 나와있지만 대한민국에 볼펜 하면 “모나미 153” 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흰색 원통에 아래 위 까만 꼭지로 이루어진, 흑과 백이 조화를 이룬 그 단순한 볼펜. 빨간색과 파란색도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에 그것으로 ‘딸깍’ 소리를 내면 박달나무로 뒤통수를 얻어맞곤 했던 그 볼펜. 중학교 음악시간에 그 볼펜으로 ‘딸깍’ 소리를 내었다고 음악 선생님에게 박달나무로 뒤통수를 된통 얻어맞는 바람에 기절을 했고, 그 후로 제 음악 감각이 완전히 상실되어 음치가 되었고, 머리도 무지하게 나빠진 그런 역사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그 구타 사건 때문에 노벨 물리학상 내지는 노벨 화학상 하나를 놓친 것입니다. 살면서 웃기는 애들이 그 상 타는 것보고 그 상 받고 싶은 맘이 싹 없어졌지만.
모나미 볼펜이 그런 국민적 볼펜인 시절이 있었는데 재미있게도 그 볼펜의 상품명이 “모나미 153”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국민들이 그 상표명에 있는 “153”이라는 숫자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볼펜만 잘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게 되면 아주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Triple Cubic Number
1의 3승은 1, 5의 3승은 125, 3의 3승은 27. 3승한 3개의 수, 즉, 1. 125, 27을 모두 더하면 다시 153이 됩니다.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이 숫자가 네 개 밖에 없는 Triple Cubic Number 중의 하나입니다. Bible에서 Cubic, 즉 정육면체가 의미하는 것은 지성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말씀을 듣고 만든 지성소가 정육면체입니다. 지성소는 거룩한 곳. 그것도 지극히 거룩한 곳. 즉, 정육면체는 “거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Triple Cubic Number는 거룩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입니다.
153은 다음의 성경 구절에 나옵니다.
Jesus said to them, "Bring some of the fish you have just caught." Simon Peter climbed aboard and dragged the net ashore. It was full of large fish, 153, but even with so many the net was not torn.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요한복음 21:10-11)
위의 대목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을 보면서 주님을 부인하고 배신한 베드로가 좌절하여 복음을 놓고 생업인 고기잡이로 돌아갔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 역사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 전공은 목공일입니다. 베드로 전공은 고기잡이입니다. 고기 잡는 일에 관한 한은 베드로가 프로이고 도사입니다. 그런데 허탕치고 있는 고기잡이 선수에게 낚시에는 문외한인 목수가 나타나 그물을 이렇게 던지라 저렇게 던지라고 하니 어찌 보면 참 가소롭고 웃기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말대로 하여 고기가 엄청 잡히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낙담하고 고기 잡는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 베드로에게 나타난 153이라는 숫자는 영혼을 낚는 거룩한 일로 나서자는 주님의 메시지이고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Triple Cubic Number로는 370이 있고 371이 있고, 407이 있습니다. 이들 숫자에 모두, 수학을 창조하신 주님의 놀라운 섭리가 담겨있습니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371이라는 숫자는 노아가 방주 안에 있었던 날의 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수학을 창조하신 주님
성경이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쓰여진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알파벳마다 해당 숫자가 있어 성경 필사를 할 경우, 오류 여부를 각 구절의 숫자의 합이 같은 지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필사하면서 생길 수 있는 오류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음악도 수학이고, 미술도 수학입니다. 음악은 진동수로 음 높이가 구분되고 수학이기 때문에 수학적인 전기신호로 바뀌고 스피커로 다시 재생되어 나올 수 있는 것이고 색도 마찬가지로 컴퓨터 화면에 표시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도 원자로 구성된 수학적 물질이기 때문에 음악의 진동수와 맞아 공진이 (resonance) 일어날 때 아름다운 소리를 느낄 수 있다는 소리가 그저 궤변일 뿐일까요?
수와 기하, 공간의 미학.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원 버스에 세우듯 꽉 밀착시켜서 한 곳에 모으면, 전 세계 인구를 제주도에 다 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주님이 만드신 공간의 미학.
온 우주의 물질들을 압축하면 골프 공만한 크기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 물리학자들은 다 알고 있다는 그 이야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과학이 발달이 되면서 좋은 장비로 물리학자들이 물질을 들여다 보니, 원자가 보이더라. 원자를 들여다 보니, ‘허걱’ 그저 공간일 뿐이더라. 저기 가운데 원자 핵이 있고, 저 멀리 전자들이 핵 주변을 도는데, 보니 나머지는 전부 빈 공간이더라. 다시 핵을 들여다 보니 그 곳 내부에 양자와 중성자가 있는데 그것들을 다시 들여다 보니 그것 역시 허풍선일 뿐이더라. 물질의 형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물질 자체가 아니라 어떤 필드(field), 서로 작용하는 어떤 필드가 물질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럼 그 필드는 어떻게 형성이 되는 것일까? 창조주가 하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주님이 그 필드를 풀어버리면 온 우주가 다시 무(無)로 돌아가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무(無)에서 유(有: you?)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증거가 보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만져지는, 그 놀라운 창조의 비밀. 창조주 주님의 무한한 능력, 그의 놀라운 사랑, 감사와 찬양이 그저 절로 나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power line을 언제라도 끊으시면 그냥 무(無)일 나를, 이 천지간 만물을 care하시는 창조주의 사랑. 놀라운 구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And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up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 of the waters.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2)
위의 창세기 1장 2절의 영어 말씀은 킹제임스 버전입니다. 이 버전의 말씀이 기가 막힌 표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이 수표 보이드(void) 시키듯 필드를 보이드시켜 버리면 우주만물이 형태가 없어져 버리는(without form)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