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해에 1억원 이상을 후원금으로 쓰며 국내외에서 어린이 돕기에 열심인 중견 배우 정애리를 여성조선 7월호가 만났다.
정애리는 8년 전부터 봉사활동을 해왔지만, 언론 앞에 나서는 일은 드물었다. 선의로 시작한 일이지만 오해를 사기도 해 되도록 조용히 활동했다. 하지만, 나눌수록 더 기쁘고 행복하다는 걸 깊이 느낀 정애리는 이제 그 기쁨을 널리널리 알리려 용기를 냈다.
정애리는 방송 촬영으로 처음 노량진에 있는 ‘성로원 아기의 집’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나눔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 정애리는 우연히 한 프로그램에서 성로원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놀랍게도 이후 성로원을 찾는 발길과 도움을 주는 손길이 늘어났다. 그때 정애리는 깨달았다. 좋은 일은 혼자 쉬쉬하면서 할 게 아니라 널리 알려 다 함께 하자고.
지난 5월, 정애리는 난생처음 베트남에 다녀왔다. 그곳의 결연 아동들을 방문, 현장을 체험하고 선물을 나누어주기 위해 떠난 길이었다. 흐엉후아(Huong Hoa) 지역은 다양한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산악지대로 교통이 불편하다. 대부분 농사를 짓지만 수로 정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수확량은 미미하다. 질병, 가난, 기아 등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아이 한 명을 새로 후원하게 됐어요. 호치메(Ho Thi Me)라는 일곱 살 난 아이에요. 부모와 자녀 넷이 있는 가정인데 1년에 겨우 600kg의 쌀을 수확해요. 쌀을 구하는 게 그 가족에게는 가장 큰일이죠. 호치메는 하루에 두 번 밥을 먹는데, 반찬은 주로 소금이에요. 아빠는 농사를 짓지 않을 때는 다른 사람의 농사일을 거들거나 쥐를 잡아서 판대요. 아빠의 꿈은 아이들이 밥을 잘 먹고 사는 거예요.”
이미 국내 아동 5명, 해외 아동 200명을 후원하고 있던 정애리는 그렇게 후원 아동 한 명을 더 늘렸다. 다른 후원을 받고 있지 않은 데다 도움의 손길이 간절한 걸 알면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정애리는 나눔에 중독되었다고 자백한다. ‘이왕이면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일에 중독되자’고 한다. 예쁜 아이보다 아픈 아이에게 더 눈길이 갈 만큼 정애리의 나눔 중독은 오래되었다.
“처음 성로원에 갔을 때는 저도 모르게 예쁘고 깨끗한 아이에게 눈길이 가더라고요. 그 아이들은 자기가 선택 받을 걸 알아요. 이제는 힘들고 아픈 아이들이 먼저 보여요. 시야가 좀 더 깊고 넓어진 것 같아요.”
성로원의 아이들은 정애리를 ‘정어리’라고 부르곤 했다. 더 어린아이들은 그걸 듣고 또 따라 해 나누는 사람 정애리는 ‘정어리 이모’가 돼버렸다. 그 우스꽝스러운 별명을 말하면서 본인이 더 좋아한다. 쌀쌀맞아 보이던 그녀의 인상이 푸근해 보인다. 이 또한 나눔의 결과일 것이다. 나눔이 주는 좋은 영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눈 만큼 채워진다는 걸 정애리는 몸소 느끼고 있다.
“어른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뭔가를 바라죠. 하지만 아이들은 충분히 많은 걸 줬어요. 집안에 웃음꽃을 피게 했잖아요. 나누면서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죠. 피폐한 상황에 처한 사람의 이면과 사연을 보게 됐고요. 그건 나눔이 가져다준 보너스예요.”
더불어 자신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도 커졌다. 앙상하게 마른 어린아이들을 보며 먹을거리의 귀중함을 깨달았다. 그녀도 때로 비싼 점심도 먹고, 한 끼 식사비용에 버금가는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그때마다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 애쓰고, 단지 멋 때문에 마시는 게 아닌지 자문한다.
정애리는 매년 1억 원 이상을 후원금으로 쓴다. 작정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점점 후원 규모가 커지고 있다. 2005년에는 자원봉사 이야기를 담은 수필집 ‘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를 출간하고 인세 수입 1억 원을 전액 후원금으로 내놓았다. 같은 해부터 기아체험에 참여하고 있으며, 인도, 몽골, 방글라데시, 베트남, 우간다, 잠비아 등지를 찾아 결연 아동을 만나고 돌아왔다. 지난 3월에는 후원 아동을 105명에서 205명으로 늘렸다.
“정기 결연이라는 건 매달 후원금을 내는 거잖아요. 100명을 추가 결연할 때 경기가 제일 안 좋았어요. 하지만 가장 힘들 때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머릿속으로는 계산을 좀 했어요. 혹시나 후원금을 못 맞출 만큼 수입이 없으면 어떡하나. 사흘 정도 시간이 흐르고, 결정했다는 전화를 했는데 후원금이 2만 원에서 3만 원으로 올랐다지 뭐예요. 고민하지 말고 바로 할 걸 그랬어요.(웃음) 역시 미루면 안 돼요.”
후배 연기자들이 나눔에 대해 물어오는 일도 왕왕 있다. 정애리는 친절히 상담해주지만, 자신과 똑같은 방법을 택하라고 종용하지는 않는다. 후원 받아서 봉사단체를 만들라는 권유를 받기도 하지만 그냥 자원봉사자인 게 좋다고 했다.
정애리는 파양된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 두 번 버림받은 아이들의 상처는 깊다. “파양된 아이들을 보면 제가….” 미처 말을 끝맺지 못하고 정애리는 다시 눈물을 쏟았다.
후원 아동을 더 늘려갈 계획이라는 정애리는 스스로 묻는다.
“돈을 얼마나 더 벌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