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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웨슬레 목사의 성장배경
요한 웨슬레(1703.6.19-1791.5.2)는 런던(London)에서 400리 북쪽에 있는 '링컨 사이어주'의 '엡웟' 교회 목사관에서 출생했다. 그의 가족은 증조부와 조부에 이어, 아버지까지 목회자였다. 아버지 사무엘 웨슬레는 옥스퍼드 출신 영국 성공회 목사로 40년간 엡웟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어머니 수잔나(Susanna:1669-1742)도 교양과 지성을 겸비한 현모로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목회자 집안의 청교도파였으며, 헬라어, 라틴어와 불어 등에 능한 분이었다. 어머니 수잔나는 19남매를 낳았으나 10 명이 죽고, 딸 여섯과 아들 삼 형제만 길렀다. 어머니 수잔나의 교육철학에는 "제 마음대로" 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자녀에게 조용히 울도록 가르쳤으며, 다섯 번째 생일에 알파벳을 배우게 하고, 다음날 아침부터는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읽기를 철저하게 교육시켰다. 자기 전에 시편과 성경을 읽게 하고 기도를 한후 잠자도록 하여, 종교적 부흥을 일으키는 자녀를 키워 냈다.
“웨슬레가 태어나던 시대는 영국에 산업혁명이 일어난 시대로, 제임스 와트 (James Watt:1736-1792)가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아크라이트 (Richard Arkwright:1732-1792)는 방적기를, 카트라이트(Edmund Cartwright)는 방직기를 발명하였다. 이런 기계의 발명으로 실직자들이 생기고, 농민들은 공장과 광산 등으로 몰려들어야 했으며, 그런 지역에는 교회도 학교도 없었다. 영국 성공회의 교구제도는 무너져 갔고, 이신론의 공격과 영향을 받아 영적으로 혼란한 상태에 빠졌다.”(이형기,op.cit.,pp. 329-330)
웨슬레는 17세 때에는 옥스포드 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는 대학시절에도 어린 시절에 배워온 영향으로, 매일 성경을 읽고, 토마스 아켐피스의‘그리스도를 본받아’,‘엄숙한 소명에로의 부름’등 경건한 서적을 읽으면서, 학문에 심취함과 동시에 신앙과 경건의 훈련을 철저히 쌓으면서 행복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1725년 22세 때에 대학졸업을 하고, 1726년에는 옥스퍼드 링컨(Lincoln)대학의 강사가 되어 히브리어, 희랍어, 라틴어, 논리학, 철학, 신학 등을 연구하였다. 1729년-35년까지 옥스퍼드 대학의 조교수가 되어 활약하였다. 이때 동생 찰스 웨슬레(Wesley, Charles)가 조직한‘신성구락부’(Holy Club) 리더가 되었다.” 이들은 기도와 성경공부 및 영적인 경건훈련을 규칙적으로 행하여 "성경벌레", "규칙장이" (Methodist)들의 모임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실하게 모임을 이끌었으며, 감옥과 고아원 심방, 빈민구제 사업에도 열중하였다.
웨슬레는 이신론을 반박한 로우(William Law)의 헌신적인 삶의 모범을 연구하며 실천하였고, 모르간(W. Morgan)의 영향을 받아 죄수들을 방문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웨슬레를 중심 한, 옥스퍼드의 소수 젊은이들은 열심히 기도하며 성경을 읽고 연구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갔다. 특히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과 죄수들과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서 도우며, 그들을 위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러한 모임은 영국에 100여 개가 있었으며, 웨슬레의 아버지도 이런 경건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영국 전체적인 교회의 모습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이라든가 종교적 열정은 극히 약화되어, 영국교회의 상태를 변화시킬 만한 복음의 능력을 기대할 수 없는 극도로 침체된 상태에 있었다."
이런 상태의 영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요한 웨슬레와 동생 찰스 웨슬레와 휫필드와 같은 사람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실 준비를 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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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웨슬레 목사의 신체험
웨슬레는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 선교를 위해 1735년 10월 14일 제2차 모라비안 선교 파견대가 조지아 주 인디안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신세계로 향할 때에, 함께 동생 찰스(Charles Wesley:707-1780)와 동행하였다. 이 당시 북아메리카에는 인디언과 각 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새로운 꿈과 함께 정신적 불안감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선교사를 필요로 하였다. 웨슬레는 인디언 전도를 위하여 이 배를 탔는데, 그 배는 출항하여 '죠지아주 사바나' 항에 도착하기까지 57일간의 긴 항해를 하던 중, 큰 풍랑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죽음의 공포에 빠지게 되었다.
웨슬레는 다른 사람의 생명보다는 오직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만 염려하고 있었는데, 그와 동승한 '모라비안' 교인들은 침착한 모습으로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이를 지켜본 웨슬레는 자기의 신앙이 그들에 비교해서 아주 미약함을 깨달았다. 사바나에 도착한 후에 웨슬리는 인디언 선교를 위하여 그리고 목회 하는 일을 위하여 모라비안 지도자로 후에 진젠돌프의 후계자가 된 슈팡엔베르그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슈팡엔베르그는 웨슬레에게“나는 한 두 가지 질문을 당신에게 하고 싶소. 당신은 마음속에 증거를 갖고 계시나요?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영과 더불어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나요?” 하고 물었다. “나는 놀랐다. 나는 대답할 바를 몰랐다.” 그는 “당신은 예수를 아십니까?” 하고 다시 물었다.“나는 말문이 막혔다가 이렇게 말하였다.‘나는 그가 이 세상의 구주임을 압니다.’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가 당신을 구원하셨다고 믿습니까?’이때 나는‘그가 나를 위해서 죽으셨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하였다.”(Jounal vol.I Feb.7.1736). Ibid., pp. 332-333.
웨슬레는 인디안 선교에 최선을 다했으나 그의 선교는 실패하고, 1738년 2월 1일 본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영국으로 돌아온 웨슬레는 영국 성공회에서 행함으로 구원 얻으려고 노력했던, 자신의 신앙에 대해 깊은 명상을 하면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모라비안들과 접촉하였다. 그는 런던에 설립된 모라비안 선교단체와 접촉하며, 지도자였던 뵐러 (Peter Boehler)에게서 종교적 자문을 구했다.“웨슬레가 구원의 확신에 대한 신앙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설교할 수 없다고 하자, 뵐러는 오히려 구원의 확신을 가질 때까지 더욱 기도드리며 계속 설교할 것과 구원의 신앙을 가지면, 새로운 능력의 설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Ibid., p. 333.
미국 선교의 실패를 통하여 웨슬레는 놀라운 것을 체험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사람은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는 본국으로 돌아온 후에 몇 해 동안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적극 주장하던, 모라비아 교도들과 교제를 가졌다. 무엇보다도 웨슬레에게 신생을 가져온 것은, 올더스케이트의 모라비아 형제단의 집회에서였다.
웨슬레가 놀라운 성령의 체험을 하기 조금 전인, 1738년 5월 20일 동생 찰스 웨슬레가 늑막염으로 고통하고 있어서, 동생과 자신을 위하여 철야기도하며, 성령강림과 평화회복을 위하여 애쓰며 기도하였다. 찰스 웨슬레는 1538년 5월 21일 중병가운데서 성령체험을 하였다. 그 후 요한 웨슬레는“1738년 5월 24일 저녁 그의 생애를 바꾸어 놓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 날 저녁 그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 상태에서,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모임엘 갔다. 거기에서 어떤 이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읽는 것을 들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하여, 우리의 심령에 역사 하시는 변화에 대하여 읽고 있는 동안, 그는 그의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다.“나는 구원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에게 나의 마음을 전적으로 맡겨야함을 확신하였다. 그리고 그가 나의 죄를 도말하셨고, 나를 죄와 죽음의 법으로부터 구원하셨다.고 하는 확신이, 나를 사로잡았다.(Jounal,May, 24.1738.)" Ibid., p. 333.
웨슬레는 이 올더스케이트의 모라비아 형제단의 집회를 통해서 거듭남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신뢰하는 믿음이 생겨났고,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의롭게 되며, 성화도 하나님의 은사임을 깨닫게 되었다. 웨슬레의 중생, 거듭남의 체험은 그의 나이 35세 되던 해였다. 그 후 웨슬레는 확신과 능력과 마음의 평화를 얻어, 은혜의 복음전도자가 되었다. 웨슬레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며 행함으로 의로운 신자가 되려고 노력해 왔지만, 거듭되는 좌절 속에 있다가 모라비안 형제들로부터,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진리와 성령의 체험을 받아 새로운 역사를 이루게 되었다.
** 요한 웨슬레 목사의 소명을 향한 생애
웨슬레는 거듭남의 체험 후 지금까지 그의 영적성장을 도와주었던 모라비안 사람들에 대하여 더 알고 싶어서, 회심한지 3주도 못되어, 독일 헤른흐트에 가서 진젠돌프를 만나 2주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1738년 9월 영국으로 돌아왔다.
영국에 돌아 온 웨슬레는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의롭게 된다는 것과 성화도 하나님의 은사라는 것”을 설교하였다. 그러나 많은 강단이 그를 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런던 주위에 있는 교회나 아니면 야외에서 매일같이 전도설교를 하였다. "1739년 휫필드(Whitfield Gorrge:1714-1770)는 브리스톨 ( Bristol)에서 야외설교로 큰 부흥을 일으키며, 친구 웨슬레를 브리스톨로 초청하였다. 웨슬레는 야외설교를 꺼려했으나 곧 익숙해졌고, 그 후 50년 동안 야외설교의 방식을 충실히 활용하였다. 휫필드는 모어필드 교회를 세웠고, 미국에 건너가 초기 감리교 신앙 운동에 기여한 부흥사였다. 그는 초기 영국 킹스우드의 석탄 광부들에게 야외에서 설교했다.” Ibid., p. 334.
웨슬리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로 전도 여행을 다녔다. 당시 그의 설교를 듣는 많은 사람이 소리 지르며 졸도하기도하고 진동하기도 하였다. 두 설교자 웨슬레와 휫필드는 이것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요, 사탄의 저항으로 보았다.
웨슬레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설교할 때에, 청중들은 설교를 듣고 너무 감명을 받아, 입을 멍하니 벌리고 웨슬레를 바라볼 정도였다. 웨슬리는 로우(W. Law: 1686-1761), 아캠피스(Thomas a Kempis : 1379-1471), 테일러(Jeremy Taylor:1613-1667)와 같은 영성 깊은 신앙인들의 작품에서 그의 영력을 키웠다.
웨슬레가 살아가던 당시 영국은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고, 사치와 약한 자에대한 혹사로 사회정의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였다. 교회의 출석은 말이 아니었고 생동력 넘치는 신앙의 모습을 찾기 어려운 시대였기 때문에, 그는 신앙적 행위를 강조하였다. 웨슬레가 신앙인의 경건생활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믿는 자가 이 세상에서 거룩해질 수 있으나 모든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웨슬레는 1739년 5월 12일에 최초의 교회를 세웠다. 처음에는 이 교회가 가정에서 모였고, 그 다음에는 자체 건물을 갖게 되었다. 그 다음 이회의 회원이 많아지자, 12인으로 속(Class)을 두고, 각 속에 대표자를 두었다. 이 속들은 매 주마다 모여서 성경책을 읽고, 기도하고 자신들의 문제를 토의하고 기금을 모았다. 그는 평신도의 교회참여를 북돋아 주었고, 특히 속회를 여성들도 지도하게 하여, 여성들에게 탁월한 자리를 주었다. 또한 그는 뛰어난 조직가로서 평신도 지도자들을 육성하면서 전도 사업의 조직체도 아울러 키워갔다.
"웨슬레 운동은 급성장하여 그는 영국 전역으로 다니면서 선교를 해야 했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 했다. 영국 브리스톨의 주교가 웨슬리의 전도로 성공회 교구들이 방해를 받는다고 하면서, 웨슬리의 전도활동을 방해하려하였다. 그러자 웨슬리는 "온 세계가 나의 교구이다" (The all world is my parish)라고 응답하였다. 이 말은 처음에는 성공회에 대한 항거의 뜻을 담고 있었지만, 훗날 이것은 감리교 선교의 표어가 되었다." Ibid., p. 336.
웨슬레는 70세가 될 때까지 하루에 여러 차례 설교를 했고, 매년 말 타고 수만 마일을 달려야 했다. 지구를 15회 이상 돌만한 거리인 160만 마일을 말을 타고 다니면서 전도 여행을 했으며 141편의 설교집(42,400회 설교), 의학서적, 영문법, 논문 등 모두 440여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또한 네델란드, 독일, 영국의 섬들, 스코틀랜드와 웨일즈를 여행하면서 세계적인 선교를 감당하였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무렵에는 12만 5천명의 감리교인과 1500명의 감리교 설교가가 생겼다. 웨슬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와 거듭남 그리고 기독교인의 성화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믿는 자의 윤리적, 개인적 '완전'의 삶을 강조하였다.
웨슬레가 거듭남을 체험한 후 세상을 떠날 때가지 줄곧 주장한 사상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이었다. 이 사상은 옥스퍼드에서 터득한 것인데 그는 이것을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취할 의무 중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말한 완전이란 사람은 자의로 범하는 죄 외에 본의 아니게 짓는 죄도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다 그러나 죄의 용서로 깨끗함을 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여 성령의 선한 열매를 맺을 때 그는 완전한 사람이 된다고 하였다. 웨슬레는 완전을 위해 건전한 금욕생활을 강조한 일도 있었다. 이점에 있어서 그는 청교도들을 많이 본받고 있었다.
웨슬레가 운동을 전개하는 상황에서 평신도 설교가가 필요하게 되자 평신도를 설교자로 세우는 것이 자신의 긴박한 운동에 대한 응답으로 확신하였다. 그는 성만찬만 제하고 많은 부분을 평신도들에게 맡겼으며 여자들의 속은 여자 속장을 두어 여성 지도력을 키워나갔다. 또한 대 전도운동을 전개하여 놀라운 복음주의적인 부흥을 가져와 영국사회를 변화시키고 미국을 복음화 하는데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는 항상 자기 생명을 땅위에 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평생을 선교와 말씀 증거 하는 일에 힘썼다. 온 세계가 나의 교구이다" (The all world is my parish) 라는 구호를 외치며 세계를 가슴에 품고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던, 그는 1791년 3월 2일에 53년의 전도사역을 마치고 88세를 일기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말을 남기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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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웨슬레와 모라비안 교도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리가 미국으로 가려고 탄 배가 항해 중 침몰직전의 위급한 상황을 만납니다. 그때 미국 인디안에게 선교하기 위해서 선교사로 가는 자신은, 지금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데, 한 쪽 구석에서 그런 다급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찬송을 부르고, 평안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이들이 바로 모라비안 교도였습니다.
웨슬리는 미국선교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모라비안에게 많은 영적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시 모라비안은 진젠돌프 백작이 이끌었는데, 다양한 교파적 배경을 초월하여, 하나 된 교회생활을 시도했고, 적극적으로 선교를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 하나 유명한 것은 그들의 찬송이 매우 깊은 영성과 품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레와 모라비안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요? 그 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웨슬리는 신대륙의 조지아(Georgia) 주에서 선교사역을 하기 위하여, 1735년 10월에 런던을 떠났다. 대서양을 횡단하던 웨슬리는 미국에 도착하기 약 10일 전인, 1736년 1월 25일에 심한 폭풍우를 만나서,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됐다. 이때 웨슬리는 그런 형편에서도 변함없이 평안히 기도와 찬송을 하면서, 배 안에 있는 궂은 일을 불평없이 감당하는 무리를 보았는데, 그들이 바로 영국을 출발할 때부터 함께 하였던 모라비안 교도들이었다.
웨슬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신을 발견하였으며, 동시에 그와는 달리 평안한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모라비안 교도들에게서 큰 충격을 받았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독일의 경건주의 전통을 따르는 이들로서, 독일을 떠나 웨슬리처럼 조지아 주로 가고 있었다. 웨슬리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그들 안에 있는 깊은 신앙을 발견함과 동시에, 그들이 신학적으로 영국국교회와는 차이가 있다는 점도 발견했다.
모라비안(Moravian)운동은 교회사에서 잘 알려진 운동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는 그들은 최초의 프로테스탄트라는 점과, 현대 선교운동의 선구자라는 점과, 교회연합을 강조하였다는 점등 이다. 특히 그 운동의 지도자 진젠도르프의 신앙과 열심, 그리고 헌신은 그리스도교 지도자의 훌륭한 모델로서 비쳐지고 있다. 모라비안 운동이 교회사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의 영향이 지역적으로 유럽의 여러 지역과 세계에 널리 미쳤다는 점이다. 그래서 로날드 녹스(Ronald Knox)는 모라비안 운동의 그런 점을 가리켜 "유럽선교에 활력 있는 누룩"이라 하였고, 비숍 하세(Bishop Hasse)는 말하기를 "모라비안의 영향은 초기 영국의 부흥의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라고 하였다.
죠지아에서 그들의 활동은 좋은 반응을 보였고, 마침내 더 많은 선교사를 죠지아로 파송하도록 결정하였다. 1737년 8월, 26명이 헤른후트를 떠나 런던을 통과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런던에서 죠지아로 가는 배를 잡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시몬즈(Simmonds)라는 배로 대서양을 횡단하게 되었다. 그 배에는 당시 죠지아 총독 오글톱의 초청을 받고 죠지아로 가는 요한 웨슬레와 찰스 웨슬레도 승선을 했는데, 바로 이 사건이 18세기 영국교회의 부흥운동을 가져온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배에는 영국인 벤자민 잉함(Benjamin Ingham)과 찰스 델라모트(Charles Delamotte)와 같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도 후에 부흥운동의 지도자들이 되었는데, 하나님의 방법은 우연한 만님인 것 같은 사건을 통하여, 사람을 예정된 축복의 도구로 삼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웨슬레가 그 후에 모라비안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웨슬리의 부흥운동에 연결되는 것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들은 3개월이란 긴 항해를 통하여, 영적으로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였다. 잉함 목사는 후에 미국에 돌아와서, 형제단의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어 활약하였다.
** 거듭난 요한 웨슬레
아메리카 선교에서 돌아온 웨슬레는 1738년 2월7일 런던에서 모라비안 목사 한 사람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피터 뵐러였다. 뵐러와 약 한달 가량 사귀는 동안, 웨슬레는 겸손한 태도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몇 가지 중요한 도리를 배웠다. 무엇보다도 기도, 예배, 성만찬, 금식 등을 열심으로 해야 한다거나, 구제, 전도, 봉사, 선교 등을 많이 하려들기 전에, 순수한 믿음으로 값없이, 자신의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그렇게 죄사함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는 일은 즉각적으로 단번에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웨슬레는 이런 말이 그때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념에 너무나 거슬렸으나 성경을 뒤져보고 과연 뵐러가 옳았다는 것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대로 되어 있지 않아 마음은 더욱 무거웠다.
그러는 동안에 뵐러의 지도를 받고, 단번에 죄사함을 받고, 중생을 하는 중생자들이 생겼다. 그 가운데에는 유기 공 브해이와 그의 누이 터너 부인, 페인트 공 흘런드 등도 있었다. 뵐러는 이렇게 거듭난 사람들과 평일에 수시로 가정집에 모여서, 신앙간증, 질문응답, 성서연구 등 을 하게 하였다.
그 해 5월 24일 수요일 저녁 웨슬레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약속을 했기 때문에, 가정집회가 있는 올더스게잇 가에 갔다. 옥스포드의 쟁쟁한 학자요, 명 설교가인 웨슬레가 그날 거기 앉아서 듣게 된 것은, 페인트 공 흘런드씨의 성경강해였다. 흘런드씨가 루터가 쓴 책을 한 권 읽어가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일으키시는 변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을 때, 웨슬레는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웨슬레 자신이 이때 마음이 이상하게 더워짐을 느꼈다고 썼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마음이 뜨거워지는 믿음을 강조하지만, 심장의 온도가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변화가 문제인 것을 알아야 한다. 웨슬레 자신의 글을 그대로 옮겨 본다. "저녁 9시 15분전쯤,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일으키시는 변화를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나의 마음이 이상하게 더워짐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위하여 내가 분명코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나의 죄를, 바로 내 것을 제해 버리셨으며,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 내셨다는, 하나의 확증이 나에게 부여되었다. 나는 좀 특별한 태도로 나를 모욕하며, 핍박해온 자들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처음으로 마음에 느낀 것을, 거기 모인 사람들 앞에 내놓고 간증하였다.‥‥ 죄의 유혹에 대하여 과거에는 은혜와 율법 아래서 힘껏 노력하고 투쟁했어도, 때로 패배했었는데, 지금은 언제나 승리자이다." 웨슬레는 영적생명을 얻었다. 그는 그날 저녁에 위에서 났다. 거듭난 것이다.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이 일이 있은지 4일 후인 5월 28일 일요일 저녁 허튼씨네 서재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웨슬레는, "닷새 전에는 내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닷새 전에 내가 이방에 와 있지 않았던 것만큼 확실합니다. 당신들도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모두들 현재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믿고, 시인하셔야 합니다." 라고 말하여, 그 자리를 반대와 야유의 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우리 영국 교회가 그리스도인도 못된 사람을 목사로 안수했단 말인가? 우리가 처음 당신을 알던 때로부터, 당신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면, 계속 우리들로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도록 행동했으니 큰 위선자입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하든지 웨슬레는 사실을 말한 것 뿐이었다.
** 요한 웨슬레의 문서 전도운동
요한 웨슬레는 18세기에 영국에서 큰 부흥을 일으켰으며, 어떤 역사가들은, 이것을 또 다른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영국을 구출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1782년에 "전도 책자 협회"를 처음으로 창시했는데,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종교책자 분배협회"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이 협회의 노력으로 영국에 사는, 수백만의 비천한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 웨슬레의 책자와 설교는 18세기와 19세기 초에 걸쳐, 수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했다.
웨슬레의 첫 책자들은 대부분 1페어의 값으로 팔렸다. 단순 명료한 웨슬레의 책자들은 때때로 특정한 사람들에게 보내졌다. 범죄자에게 한 마디, 매춘부에게 한 마디, 술주정꾼에게 한 마디 등등 런던 전역에 배포된 "심각한 회개에 대한 간곡한 권면"이라는, 그의 책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죽은 종교로부터,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산 경험을 하도록 만들었다.
웨슬레는 53년 동안 4만 번의 설교를 했는데, 약속된 설교를 하기 위해 말을 타고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책자들을 기록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그의 책자들은 영국 전역에 뿌려졌다. 그의 책자들을 통해 그의 이름이 알려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들으려고 떼지어 몰려들었다.
** 요한 웨슬레의 성결사상
웨슬레는 사람 속에서 성령께서 은혜로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은, 시간적 관점에서 볼 때 점진적인 방법과 즉각적인 방법이 있다고 보았다. 즉 하나님의 선행은총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만, 그 깨달음의 순간이 있기까지 하나님의 계속적이고 점진적인 역사가 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받기까지, 성령의 점진적인 역사가 계속된다고 볼 수 있다.
1.성령의 즉각적 역사 웨슬레는 성령의 순간적인 역사 이후 온전한 성화에 이르는 것은 성령의 계속적이고 점진적인 은혜의 역사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구원은 칭의와 성화의 두 가지 요소로 구성 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칭의에 의해서 우리는 죄책으로부터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하고, 성화에 의해서 우리는 죄의 세력과 그 뿌리로부터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 모든 경험과 성경은 이 구원의 방법이 즉각적임과 동시에 점진적임 을 보여준다. 구원은 우리가 칭의 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리하여 거룩해지고 겸손하고 온유하고 인내하며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구원의 은혜는 그 순간부터 점점 증가하기 시작한다. ~ 따라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하여 우리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목표로, 모든 면에서 성장해 가야 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점진적인 성화의 발전을 통하여, 기독교인의 생활은 결국 성화의 성숙한 단계 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완전에 도달할 것이다.
린드스트롬(Lindstrom)은 구원의 질서에 관한 웨슬레의 이론 즉 신앙의 성장과정에서 점진적인 것과 즉각적인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신생과 온전한 성화는 그의 구원론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유기적 관련이 없이 두 개의 독립된 현상으로 관찰되어진다. 웨슬레는 두 가지가 모두 사람에게 순간적으로 주어진다고 주장하므로, 웨슬레의 구원론에서는 순간적인 요소만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래서 웨슬레가 구원은 하나의 점진적인 발전과정으로 파악한 사실은 경시되고 있다. 실제적으로 점진적 발전의 사상은, 그의 구원관에서 가장 특출한 요소이며, 실제 그의 사상의 일반적인 특징인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두 가지 요소 즉, 즉각적인 것과 점진적인 것은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며, 웨슬레에게 특유한 구원의 질서는 이런 두 요소의 결합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이다. 구원은 사람이 여러 단계의 신앙과정을 통과하는 과정으로 이해되며, 각 단계는 여러 가지의 신앙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다.’
웨슬레는 사실상 구원의 즉각적인 면과 점진적인 면을 똑같은 비중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크고 위대한 변화가 순간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믿었다. 웨슬레는 구원을 언제나 연속적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다시 말하면 현재 성결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점점 더 거룩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웨슬레는 순간적으로 큰 은혜를 부어 주시는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고, 그런 은혜를 사모하도록 권면하였고, 동시에 은혜의 지속과 보다 더 큰 은혜의 세계를 향하여 끊임없는 전진과 노력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웨슬레는 점진적 역사와 즉각적인 역사를 모두 수용하면서 계속 점진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을 강조했다.
2.성령의 지속적 역사 웨슬레는 사람의 영적상태를 크게 셋으로 나눈다. (1) 자연적 상태(the natural state), (2) 율법적 상태(the legal state), (3) 복음적 상태(the evangelical state) 혹은 사랑의 상태(the state of love)로 보았다. 그러나 사람은 세 가지 영적상태 가운데, 어느 한 곳에만 전적으로 속해있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 속에 여러 가지의 영적상태가 섞여서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불신자들은 대개 자연적 상태와 율법적 상태가 섞여진 상태에 있고, 신자들은 대개 일반적으로 율법적 상태와 복음적 상태가 섞여진 상태를 가지고 살아간다. 웨슬레는 초기에는 진실한 기독교인은 오직 복음적 상태에만 머물러야 하며 율법적 상태와 섞여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웨슬레는 1738년에 행한 {믿음에 의한 구원}(Salvation by Faith)이라는 설교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에 가졌던 믿음에 대하여, 그것은 우리를 구원시키는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들이 비록 기적을 행하고 병자를 일으키고 천국의 복음을 증거했지만, 그런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웨슬레는 신앙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하게 되었고, 완전에 대한 그의 사상도 조금씩 변화를 갖게 되었다. 즉 후기에는 사랑의 충만을 통한, 완전 혹은, 자신의 무력을 깊이 인식하고, 철저히 의지하는 가운데서 완전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율법적 상태에 있는 사람의 연약한 믿음도 하나님께서는 물리치지 아니하고 받으실 것이라는 견해를 취하게 된다. 웨슬레는 1788년에 행한 {믿음의 발견에 대하여}(On the Discoveries of Faith)란 설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천국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준비시켜 주신다. 그 방법은 우리 심령의 베일을 벗기시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하나님께 알려진바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 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죄 즉, 우리의 악한 성품과 악한 기질과 악한 말과 행동 등을 분명히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죄들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나오는 것들로서 우리의 심령을 부패시키는 것들이다. 성령께서는 다음에 우리 죄의 보응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심으로, 우리는 입을 다물고 하나님께 사죄의 탄원을 하게 해 주신다.’
웨슬레의 원숙한 사상의 특징으로서, 지속적 성장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해야만 하며, 신앙의 현상유지란 일종의 퇴보라고 웨슬레는 강조했다. 따라서 영원한 성장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은 웨슬레의 구원관의 점진적 성격과 함께, 그의 완전한 성화론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런 점진적인 성장이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웨슬레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질문] : 사랑으로 완전해진 사람도 은혜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가? [대답] : 의심 없이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육체 속에 머물 때뿐만 아니라 아마 영원토록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 성결을 가져오는 성령의 사역
거듭난 후에 인간이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과 성결, 또한 사랑의 행위는 성령께서 동시에 역사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것은 의인의 근거가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과 같이 성화의 동인(agent)은 성령임을 말해준다. 믿음에 의한 의인은 구원의 뿌리(root of salvation)이고, 성령에 의한 성화는 구원의 본질(substance of salvation)이다. 성결의 은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받게 되는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성경에 보면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마3:11)라고 말했다. 이것은 성결의 은혜를 받는데 있어서, 성령의 역사와 또한 성령의 강력한 협력이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성결의 은혜는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어진다. 행 2:1-4에는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성결의 은혜를 가져온다는 성경적인 근거라고 하겠다.
웨슬레도 성령께서 한 순간에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어 주시거나, 혹은 온전히 성화되게 하실 수 있다는 점을, 올더스게잇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올더스게잇의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그리고 성령의 사역방법에 대해서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 교회를 향한 요한 웨슬레의 호소
거룩함과 율법주의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오직 거룩한 자만이 영광중에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될 것이다. 하늘 아래 어떤 것도 이것보다 분명한 진리는 없다. "비록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지 않은 사람은 결코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없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며 살지 못한 사람은, 결코 하늘에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없다. 이 땅에서 죄로부터 해방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결코 지옥불의 형벌을 면하지 못한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자신 안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하늘에 있는 왕국을 보지 못한다. 하늘에서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을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이 땅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마음을 왕처럼 완전히 주관하시는 경험을 해야만 한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자만이,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과거의 오해
거룩함, 그것은 성경 전체에 걸쳐서 너무나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 진리 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 의해서 너무나 곡해되거나 무시당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방인이나 로마제국의 이교도까지도 "거룩함"에 대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다. "신은 오직 덕성과 거룩한 마음, 그리고 정직을 기쁘게 받아들이신다."는 가르침이 거의 모든 철학과 이방종교에 포함되어 있다. 비록 기독교회가 거룩함에 대한 가르침을 전적으로 부인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중요한 진리가 교회 안에서 심하게 왜곡되거나 퇴색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로마 천주교인도 거룩함과 경건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들은 내적 경건함 보다는 종교적 의식과 예식과 같은 외적 경건함을 중요시 여기는 위험에 빠져 있다. 외적 경건함을 중요시 하는 가르침 때문에, 로마천주교회가 종교적, 정치적 주도권을 잡았던, 중세기 종교암흑시대의 사람은 선과 덕을 쌓으면, 현세에서도 복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십자군으로 징병되어 국가를 위하여 싸우다 죽는 선을 쌓으면, 내세에 천국에서 큰 상을 받게 된다는 교리에 빠져 있었다. 외적 경건과 인간적 공로와 의식을 강조하다 보니, 고행이나 험한 순례와 같은 것이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오해
거룩함에 대한 오해는 오늘에도 계속되고 있다. 과거의 로마 천주교회는 외적 경건함을 중요시함으로써, 참된 거룩함에 오해를 갖게 되었고, 오늘날의 기독교회는 그런 엉뚱한 가르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록 기독교회가 그런 가르침을 부인한다고 할지라도, 오늘의 기독교회는 거룩함이 없이도 천국에 갈 수 있는 신학적 길을 열어 놓았다. 로마천주교회에서 만들어 놓은 고해성사, 성지순례, 죽은 성자와 천사에게 드리는 기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사제들에 의한 죄의 용서와 같은 교리들은, 진리를 미처 이해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종교인의 풍습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교리이다. 수많은 천주교인이 비록 자신의 마음과 생애가 거룩하게 변화되지 않았을지라도, 이런 예식과 의식을 통하여,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고 있다. 그러면, 개신교도는 구교를 믿는 사람과 좀 나은 것이 있는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모양만 조금 다를 뿐, 그 내용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개신교인은, 천주교인이 중요시 여기는 의식과 예식은 사람을 구원하는 면에 있어서 아무런 효험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아무리 열성적으로 믿는다고 할지라도 성경으로 확증할 수 없는 잘못된 교리나 의식에 의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잘 이해한다. 그러면, 개신교인은 구원과 거룩함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들은 나쁜 짓을 안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주일마다 교회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기만 하면, 자신의 마음과 생애가 실제적으로 거룩하게 변화되는 경험을 체험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천주교인이 의식과 예식에 의존하여 내적 거룩함이 없이 구원을 바라는 것처럼, 개신교인도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주장하면서, 내적 거룩함이 없이도 하늘에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수많은 개신교인이 이와 같은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하늘을 향하여 나아가는,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문제의 핵심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적지 않은 개신교인이 구원에 대한 이런 이해보다 더 나아가 있다. 그들은 자신이 천주교인보다 구원에 대한 진보된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비록 자신이 많은 선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실생활에 있어서 악에 저항하고, 모든 시험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지 않는 한, 결코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그런 신앙은 피상적인 신앙이며, 참된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마음속에 있으며,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왕국이 마음속에 건설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해 진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사단은 어떤 방법을 통하여 개신교인이 가지고 있는 이런 믿음을 무력화시키고 있는가? 에베소서 2:8절에 있는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라는 말씀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가? 은혜와 믿음을 통한 구원론을 받아들인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개신교인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유다서 1:8). 시몬 마거스 목사가 가르치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은, 구원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조장하고 있다 ; [거짓말 1]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통당하시고 이루어 놓으신 것을 통하여,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옮겨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의는 전혀 필요 없습니다. 그분 안에 너무나 풍성한 의와 거룩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어떤 의가 없어도 됩니다. 그러므로 의를 필요로 하거나, 그것을 소원하거나, 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 모두가 나누어 갖기에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의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만일 이와 다른 것을 설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율법주의자임에 틀림없으며, 복음에 대해서 무지한 자입니다."
이런 주장이야말로 참된 기독교 신앙이 가지고 있는 거룩함의 가르침을, 뿌리부터 흔드는 가르침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그분을 사랑하며, 존중한다고 말하는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고통당하고 계신다(슥 13:6).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가장 큰 이유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기" 위함이었는데(요일 3:8),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는 십자가의 목적과 의미를 송두리 채 왜곡시키는, 가르침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가르침이 어떤 교단과 교회에서 가르쳐지던지 간에 이 가르침은 성도의 거룩함에 대한 진리를 한쪽 구석으로 치워버리게 되며, 성경적 구원론을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바꾸어 놓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생활을 살고자 하는 강렬한 소원을 상실하게 된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어진 의가 자신의 구원을 이미 보장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구원을 위한 완전한 의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의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야만, 인류 전체에게 주신 구원이 개인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의에 대한 잘못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진리에 순종하기 위한 노력과 악에 대하여 저항하는 모든 종류의 투쟁도 율법주의로 돌리게 된다.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거절하지 않기 위하여, 십계명에 순종하기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에 순종하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노력하기를 두려워한다. 성경은 "선한 일에 열심"을 내라고 권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디도서 2:14), 진리대로 살기 위하여 애쓰는 노력을 율법주의로 오해하는,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사단의 거짓과 바울의 진리
사단은 하나님의 교회를 타락시키기 위하여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사단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사단이 고안해낸, 기가막인 교리는 다음과 같다 ; [거짓말 2] : "인간은 단 한줌의 거룩함이 자신 안에 없는 상태에서도 거룩하게 될 수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믿음을 통하여 거룩함을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 안에는 실제적인 거룩함이 존재하지 않아도, 영광중에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비록 그대들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다고 할지라도,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그대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다. 비록 그대의 마음속에 질투, 시기, 돈을 사랑하는 마음, 이기심, 경쟁하는 정신, 정욕과 같은 것들이 있을지라도, 그 상태 그대로 족하다. 왜냐하면 비록 그대들이 의롭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대신하여, 그대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완전한 의를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들이 어리석음을 좋아하기를 언제까지 하겠느냐?"(잠언 12:22) 사단의 거짓을 따르는 사람은 사망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6:9) 사랑이 마음속에 있는 자는, 사랑이 겉으로 나타나게 되고, 의와 거룩함이 그 속에 있는 자는 그것이 또한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 3:1)
교회 안에 사단이 퍼트려 놓은 많은 거짓이 있을지라도, 그것에 속임을 당해서는 안된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높이는 것처럼 들릴지라도, 요한일서 3:7에 기록된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라는 말씀과 어긋나는 것은 사단의 거짓말이다.
바울은 마음이 거룩하게 변화되지 못하여 악을 행하는 자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 6:9,10) 이 말씀에 이어서 바로 연결되는 바울의 말을 주목해 보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과거에는 악에 빠졌었지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 마음과 생활이 악으로부터 돌아서고, 거룩하게 변화되어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된 고린도 교인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에서, 우리는 의에 대한 분명한 진리를 배워야 한다. 바울은 마음과 생애 속에서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진정한 변화를 말하고 있다.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의롭다 하심"(칭의)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마음과 생애가 거룩하고 의롭게 변화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못하는 분이시다. 속에는 더럽고 추한 것이 가득 들어 있는데, 예수를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어떻게 의롭다고 선언할 수 있겠는가?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잠 17:15)
자유에 대한 오해
바울은 죄인이 의롭게 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바로 이것이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 안에서 일어나는 참된 해방과 자유의 경험이다. 이 경험은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거나 폐지시킴으로써 얻는 자유(방종)의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불순종이고 반역이다. 참된 자유란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을 깨달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다시는 악에 빠지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강렬한 생명력이 창조되고, 또한 성령의 호소와 인도하심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그 결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어지는 자유란 막연하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나 실제적이며 구체적이어서 실제 생활에서 경험되는 자유이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진리와 하나님의 법을 무거운 멍에라고 생각한다. 성경이 요구하는 원칙과 십계명이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마음이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명령)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바울은 인간을 얽매고 있는 진짜 멍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은 자는, 종의 멍에, 즉 죄와 악의 멍에를 벗어버린 그리스도인을 말한다. 나는 분명하게 간증할 수 있다. 만일 그대가 여전히 죄를 고집하며 살아간다면, 그리스도의 피와 희생은 그대의 구원을 위하여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 ~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대가 붙잡혀 있는 죄로부터 그대를 구원해 주시지 못하고, 그대의 마음과 믿음을 정결하게 해주지도 못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그대의 개인적인 구세주가 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피와 희생이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의 중심에는 거룩함이 존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유다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눅 22:48) 회개하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양쪽에 날이 선 검(말씀)에 의하여 그대의 심령이 쪼개어지지 않는다면, 그대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강림을 막고 있는 장본인이며,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어 달은 자이고, 그리스도를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자이다. 사단이 교회 안에 교묘하게 퍼뜨려 놓은 거짓 교리,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전하고 거룩한 의를 온 인류를 위하여 이미 이루어 놓았기 때문에, 믿기만 하면, 그대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여서 거룩하게 변화된 마음과 생애를 소유하지 않아도 그리스도를 영광중에 볼 수 있다."는 교리는 십자가 위에서 뿌려진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히 10:29). 깨어야 한다!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죄인들도 형벌을 받을진대, 하물며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자가 죄 가운데서 살다가 죽으면, 그 받을 형벌이 얼마나 중하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이, 어떻게 죄 가운데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1:3) 의와 거룩함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고 단순하게 설명하였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형제자매여, 진리로 돌아오라! 제자들과 사도 바울이 믿고 가르쳤던, 복음으로 돌아오라! 그대를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라!
행함에 대한 오해
죄와 악을 버리고 거룩한 생애를 살기 위하여 그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일을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믿음도 헛된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약 2:20).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더라도, 원수와 그대의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과 그에 따른 행실이 없다면, 그대가 공언하는 믿음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과 생애 속에서 그리스도의 피의 권세가 죄를 몰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저(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이런 자들은 그들이 오히려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를 안다고 하니, 그것으로 인하여 그 받을 형벌이 증가될 뿐이다. "누구든지 다르게 가르치며 건전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함에 대한 교리와 일치하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질문과 언쟁만을 좋아하는 자니. 거기서 시기와 다툼과 악담과 사악한 의심이 생겨나며,"(딤전 6:3~5).
부디, 내적 거룩함과 외적 거룩함이 동시에 강조되는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완전한 진리가 성도들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야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상에서 높이 들려질 수 있다. 거룩함에 대한 가르침을 무분별하게 율법주의로 몰아부치지 말라. 죄의 법에 종으로 살기를 두려워하되, 하나님의 법에 종으로 살기를 즐거워하라! 성경의 표준과 원칙을 높이 들어 올리는 설교를 사랑하라! 자신의 마음과 생활을 살피게 하고,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닮지 않는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설교를 피하지 말라! 그대의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의 깊이를 깨닫게 이끄는 설교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라!
어떤 사람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빌 4:13).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있고, 또 그분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그분이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백성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된다. 주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드리도록 하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나를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 14:14,21)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그분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말자!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의 모본을 따르며, 그분이 행하셨던 일들을 우리도 행함으로써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자!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신뢰하도록 하자. 그분께서 우리 마음과 생애 속에서 이미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끝마치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따라가도록 하자. 자존심, 분노, 악한 소원과 같은 것들이 그리스도의 피에 의하여 정결하게 될 때까지 그분께 붙어 있도록 하자.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을 우리 속에서 끝마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드리자.
그리스도를 단지 죄의 책에서 죄의 기록을 지우는 분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회개의 심령을 가져다주시며, 우리 안에 올바른 정신과 마음을 창조해 주시는 분으로 소개하도록 하자. 바로 이것이 진짜 복음이며, 오류에 물들지 않은 순결한 복음이다. 이것은 새로 발견된 복음이 아니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복음으로서, 아담과 하와가 믿었고, 아브라함이 믿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셨고, 제자들과 사도들이 믿었던 복음이다. 이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복음이며, 시몬 마거스 목사가 가르치는 복음과는 전혀 다른 복음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이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6~19) |
** 요한 웨슬레의 신학
1. 요한 웨슬레의 신학형성의 배경과 그 운동의 특징
1) 18세기 신학적 영국 국교회의 상황 18세기엔 칼빈주의적인 특성을 갖고 있었으나, 말엽에는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책임관계 면에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은 만민을 위한 것이나, 개인의 구원여부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렸다. 곧 믿음을 하나의 선행으로 보았다. 웨슬레 부모의 신학 역시 구원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로 보지 않고, 인간의 도덕적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선행이라고 생각하여, 인간행위로 보았다.
2) 종교적, 도덕적 상황 웨슬레 당시, 18세기 신앙은 자연신론이 성행하여 하나님은 창조주일 뿐, 세상의 과정에는 관심 갖지 않고, 우주와 세상은 자체의 운명에 맡겨져 있다고 믿었다. 당연히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 같은 초월적인 것을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기독교의 초자연적 요소는 제거하고, 신앙을 이성에 예속시키는 일을 강조했다. 18세기 도덕적 상황은 한마디로 부패 자체였다. 문학은 저속하고 철학은 이성의 장난처럼 되어 버렸다. 교회도 부패해 있어 성직이 뇌물에 의해 좌우되는 일도 잦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기독교를 공개적으로 무시하게 되었다. 흑인노예의 판매가 크게 행해지고 있었던 것을 들어, 지금의 인신매매와 비교할 수 있다면, 음주향락, 폭행이 심한 것이 현재의 한국 형편과 흡사하다.
3) 웨슬레의 신앙 체험 웨슬레는 엄격한 경건의 훈련을 받으며 자라났다. 웨슬레의 부모는 엄한규율에 의해 자식들을 양육한다. 기독교는 자기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종교라고 가르쳤으므로, 웨슬레 신학형성에 영향을 준 것은 도덕적 영적노력과 천국을 위한 행함의 자세라 볼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의 청년시절의 신앙이 인간중심적인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람은 선행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고, 자신의 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신성 클럽 활동과 미국 조지아 주의 선교도 결국 자기 영혼의 구원과 자기의 의를 세우기 위한 노력에 불과하다. 후에 그는 이 시기를 아들로서가 아니라 노예로서의 신앙을 갖고 있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이런 인본적인 신앙이 1738년 5월 24일 복음적 신앙체험을 기점으로 하나님중심의 신앙으로 완전히 변화된다.
4) 웨슬레 신앙운동의 특징 웨슬레 신앙운동은 자신의 복음적 회심체험 및 성경적 구원의 확신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즉 성경적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려는 운동이었다. 구원을 위한 인간 스스로의 노력은 큰 좌절만 가져다주는 것을 웨슬레는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모든 일에 있어 성경적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결심하고, 어디에 있든지 있는 힘을 다해서, 분명하고 오랜 전통을 가진 성경적 기독교에 대한 설교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 면에 있어서는 웨슬레의 신앙운동이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동기와 비슷하다.
웨슬레 신앙운동의 특징은 (1) 정화운동에 있다. 웨슬레의 신앙운동은 당시 도덕적 타락과 부패로 편만해 있던 개인과 교회를 정화시키고자 일어난 운동이다. 당시의 영국교회는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능했었다. 사회의 고위층은 종교에 대해 냉소적이었고 대중은 교회의 영향권밖에 있었다. 국가지도층의 부패와 사회에 온갖 범죄가 난무한 상태였다. 그래서 웨슬레는 이 사회를 도덕적으로 회복시키고, 교회의 정신을 가져오게 하는 책임과 부담감을 느꼈다. 그는 계속해서 동역자에게 구한다.“여러분의 한 일은 한가지일 뿐입니다. 곧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웨슬레 운동은 처음부터 당시 영국에 있던 순수 기독교를 소멸시키고 있던 외식주의와 형식주의에 반항하는 운동이었다.
웨슬레 신앙운동의 특징은 (2) 창의적 종합에 있다. 웨슬레 신앙은 신약성경에 있는 중요한 요소에, 한 학파의 장점들을 창의적으로 종합한대, 그 특징과 공헌이 있다. 웨슬레는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신약성경에 나타난 주요한 요소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러면서 교회의 각 전통이 지니고 있는 장점을 결합시키곤 하였다. 웨슬레는 성결의 개념을 로마 카톨릭의 강조에서 가져왔고,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만으로 라는 종교개혁자들의 강조를 채택했다. 웨슬레는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와 경건주의자들이 강조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개념을 창의적으로 종합하여 기독자 완전의 성경적 교리를 수립한 것이다.
2. 웨슬레의 신학
1) 웨슬레 신학은 성경 웨슬레는 자신을 한 책(성경)의 사람이라고 자칭했고, 신앙 체험을 중시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은 그의 신학적인 글이나 교리적인 글의 원천적인 자료이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은 신학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최고 권위였다. 웨슬레는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책이고, 그릇됨이 없다."고 믿었다. 또한 웨슬레는 구원받기에 필요한 진리가 성경 안에 충족히 포함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가 성경을 연구한 것도 곧 구원의 길을 찾기 위해 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바로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셔서 친히 하늘에서 이 땅위에 오셨고, 예수 그리스도로 계시하고, 지금은 그것을 성경에 기록했다고 믿었다. 따라서 웨슬레 신학의 최고의 권위는 성경이다.
지금까지 상고한 대로 웨슬레는 성경의 권위를 강조함에 있어 전통적인 개신교의 입장인-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최종 권위이다.-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신비주의자들의 강조점을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이해- 창의적으로 종합했다.
2) 웨슬레 신학에서의 체험 웨슬레는 신학을 성경에서 시작하여 늘 신앙체험에 호소한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체험은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에 호응하는 것으로서의 체험이다. 그러므로 웨슬레가 말하는 체험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은총에 사람이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성을 존중하고 경험을 고립된 것으로 보기보다 성도의 교제 속에서-교회에서의- 경험을 존중했다.
3) 구원론 웨슬레 신학에서는 구원론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웨슬레의 신학은 전도와 설교의 현장에서 수립되었다. - 그리고 그의 설교의 강조점이 성결에 있듯이, 그의 구원론이 성결론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웨슬레는 구원이라는 말을 두 의미로 사용하였다. 일반적으로는 현재의 구원과 궁극적인 구원을 포함하여, 이를 본연의 그리스도의 구원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웨슬레는 흔히 이 구원을 현재의 구원에 국한시켜 의인과 성화를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성화에 강조점을 두어 구원론을 전개하였다. 또한 구원을 넓은 의미에서 인간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포함하여 설명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런 구원은 선행적 은총으로부터 시작하여 영화의 사건으로 종결된다. 그는 죄를 질병에 비유하고, 구원을 치유에 비유하였다. 구원의 관계를 죄문제와 연결시켜 이해할 때, 웨슬레의 구원론을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가) 원죄로 인한 죄책은 하나님께서 감사 없이 모든 사람에게 주신 선행적 은총,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무조건적인 공로로 해결된다. 그러므로 선행적 은총 아래 있는 인간은, 원죄의 부패성만을 지니고 있다. 이 부패성 때문에 실존적 인간은 죄를 짓게 된다.
나) 죄로 인한 죄책은 의인에서 용서를 받아야 한다.
다) 누적된 죄의 부패성은 성화의 과정에서 씻음을 받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에 웨슬레는 성화가 신생의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어(부분적 씻음)성화의 과정에서 완전한 성화(완전히 씻음)로 그 성장이 계속되어, 마침내 영화로 완결된다고 보았다. 이 영화의 사건에서는 죄로 인한 모든 흔적, 곧 사람이 지니고 있는 모든 제약성과 허약성에서도 해방을 받는다고 보았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웨슬레의 중요한 관심은, 현재의 구원에 있었다. 의인은 곧 죄책에서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로 회복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의인의 은혜 받기 위한 조건은, "회개하고 믿는 것이다." 웨슬레는 믿음의 중요한 요소를 분명한 신뢰와 신임에 두었다. 그리고 사람이 의롭게 되고,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신생이 있다. 이를 중생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신생을 성화의 과정에서 볼 때, 성화의 시작이다. 신생의 표적으로는 설교"신생의 표적"에서 믿음, 소망, 사랑을 들고 있다.
4) 성화관 웨슬레의 성화관은 당시의 여러 학파들과 비교해 볼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견해가 종합 되어 독특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첫째) 당시 모라비안파의 극단적인 것을 지양하는 점진적인 성장개념이다. 우리의 신앙은 사람이 출생한 후 성장하는 것과 같이 거듭난 후에도 성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이것은 웨슬레는 인간의 선악에서나 믿음에서나 또는 성경에 있어서 모두 단계가 있다고 보았고, 인간은 거듭난 후에도 아직 내적인 죄가 남았다고 보았다.
둘째) 웨슬레에게 있어서 점진적인 성장의 개념은 순간적인 요소가 종합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의 칼빈주의자의 성화론과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셋째) 웨슬레는 성화의 점진적인 과정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로서 순간에 보다 고차적으로 끌어올리는 단계에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웨슬레가 주장한 성화과정에서의 성장은 독특한 것으로, 가) 회개와 믿음으로 거듭남과 함께 성화가 시작되고, 나) 신자로서의 회개와 믿음으로 온전한 성화가 이루어지고, 다) 마침내는 영화하는 순간적인 단계에 이른다고 보았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로서의 성화는 종말론적인 목표를 향하여 계속 상승하는 것이다. 웨슬레가 성화과정에 순간적인 단계가 있다고 주장한 것은, 성화가 인간의 수양으로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 웨슬레의 선교운동의 특징은 무엇인가?
웨슬레의 선교운동의 특징은 (1) 웨슬레 자신의 회심에서 출발한 성경적 기독교의 긍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웨슬레 선교운동이 그의 회심에 대한 확신에서부터 출발되어졌다고 하는 것은 오늘의 선교에 있어서도 귀중한 교훈을 준다. 선교이론이 우선이라기보다는 먼저 전도자 자신에게 중생의 체험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전도자가 구원의 확신이 없을 때, 다른 사람에게 그 확신을 심어 줄 수 없고, 자신이 구원받은 감격이 없으면서, 남이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격하도록 만들 수 없다. 이런 감격에서 나온 헌신과 정렬이 아니고서는 변질된 열성, 곧 구원이 목적이 아닌 물질이나 명예 등을 목적한, 열성 또는 그런 것을 우선하고, 영혼구원은 부수적으로 생각하는 열성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런 체험은 웨슬레에게 "세계는 나의 교구"라는 비전과 그에 따르는 헌신적 생활을 갖게 하였다. 웨슬레에게 중요한 것은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한, 목표와 비전 자체가 아니요, 거기에 따르는 헌신적 생활인 것이다. 일찍이 웨슬레가 "하나님밖에는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고, 그리스도 그 십자가밖에는 무서워하지 않고, 죄밖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밖에는 아무도 모르는 자, 백명만 있으면, 온 세계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 말은, 세계를 교구로 한 비전을 실현시킬 참된 일꾼들을 찾고 있던, 그의 갈망과 구체적인 방법을 보여 주고 있다. 웨슬레의 열성은 하루에 평균 두 세번씩 설교하였고, 매일 90마일씩 전도 여행을 하였다. 회심 후 51년간의 전도생활을 보면, 설교를 4만 2천 4백번 하였고, 마상여행을 25만 마일을 했다. 그가 사망한 해에 영국에 294명의 설교자와 71,668명의 감리교인이 있었고, 미국 등 외지에 있는 감리교인을 합하면, 교인 약 12만명과 511명의 설교자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숫자적인 경이가 웨슬레의 전도운동을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에 못지않은 불타는 그의 구령열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웨슬레 선교운동의 특징은 (2) 평신도를 활용하는 조직적인 전도활동이었다. 1739년부터 5년간의 순회전도여행은 웨슬레에게 있어서, 전도전략을 수립하게 하였다. 이 조직이 바로 평신도를 동원하는 전도운동이었다. 이 조직체의 책임자는 목사가 아닌 평신도였다. 그리고 평신도설교자를 훈련시켰다. 뿐만 아니라 여자 평신도전도자를 등용하였다. 지금은 평신도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18세기 웨슬레 당시에만 해도, 로마카톨릭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어, 사제의 권위를 강조하는 영국사회에서 평신도가 설교를 한다거나, 더욱 여자가 설교한다는 것은, 일종의 혁명이고, 사회를 경악케 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원래 조그만 신도회라는 모임으로부터 시작된, 전도운동으로 이것이 후에 큰 성과를 보았다. 그리하여 4인의 목사와 45인의 평신도 전도인들로 한 팀씩 만들어, 성경적 기독교를 땅위에 심기 위하여 쉬지 않고 뛰었다. 그 결과 런던에 2천명 가량의 신도가 모여졌고, 속회제도가 원만히 이루어졌으며, 신도회의 연합회 헌장이 발표되었다.
오늘의 선교에 있어서도 교회의 선교구조가 평신도 중심으로 개조되어야 한다는 말을 늘 듣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교를 위한 교회의 훈련과 보다 새롭게 진취적인 방법을 개발해야 하는 일이 아울러 요청되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가는 인구와 도시화, 산업화, 분업화하면서, 사회가 다양해져 가며, 주일에 교회에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특수 직장인들도 많아져 가는 특수한 상황이 또한 평신도 중심의 기능적인 선교를 요청하고 있다. 나 하나 또는 내 교회 하나 만을 아는 근시안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세계의 일터를 내다보면서 보다 넓게 그리고 보다 멀리까지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선교구조 개편이 시급한 것이다. 또한 이를 위한 지도자 훈련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3) 특징은 선교운동에 성결의 복음이라는 훌륭한 신학사상이 뒷받침을 하고 있다. 18세기 신학에는 조직신학이 없었으므로, 그는 특별히 조직신학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설교를 통해 신학적 교리를 가르쳤다. 웨슬레를 단순히 열정적인 부흥사요, 조직적인 전도자로서만 알고 있는 것은, 불충분하다. 그의 설교를 주의 깊게 읽어보게 되면, 그가 단순히 종교의 체험에서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신학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부흥운동이나 선교운동에 무슨 특별한 신학적 뒷받침이 필요하겠는가 생각했으나, 최근에는 이 문제를 대단히 중요시하게 다루게 되었다. 즉, 신학의 뒷받침과 그 깊이가 없는 전도는 전도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신학을 공부해야 하며, 오늘날 세계선교는 깊은 신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웨슬레의 설교를 읽으면, 설교도 오늘날의 흔한 부흥 설교와는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설교는 신학논설이라고 할 만큼 깊이 있는 것이었다. 그런 설교가 18세기 영국에 그토록 놀라운 부흥을 가져왔다는 사실에 우리는 새롭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웨슬레의 중심 사상은 무엇이 있나? 한마디로 성결, 기독자의 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하는 교리는, 종교개혁의 슬로건이었고 개신교의 기본 교리라 할 것이다. 웨슬레의 구원론은 성결을 강조한다. 그러면 이 성결론이 오늘의 선교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의의는 무엇인가? 예정론에 의한 구원의 확신은 우리를 긍정적인 의미에서 적극적인 헌신의 생활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부정적인 의무에서 이해될 때 "나는 이미 택함 받았으니 내가 무슨 짓을 하든지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방심과 나태와 외식적 생활로 이끌기 쉽고, 이웃에 대해 무관심하기 쉽다. 따라서 웨슬레는 부도덕과 극도의 타락 속에 있는 사회의 구원을 생각하였다. 중생이라는 일회적 사건으로 모두 끝난 것이 아니고, 성결을 향한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웨슬레의 성결론은 선교의 방향과 목표를 분명히 하여준다. 웨슬레의 선교운동은 곳곳에서 회개를 일으키며, 많은 결신자를 얻었으나, 몇명의 구령이 그의 업적의 전부가 아니었으며, 웨슬레운동이 영국 사회를 구원하였으나 그가 인권운동이나 사회혁명을 주장하는 운동을 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일찍이 역사상에 없었던 웨슬레의 사회구원의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 졌는가? 그것은 거듭 말하거니와 성결의 복음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실에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성결을 향해 정진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사회를 정화시키고 사회를 구원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기독자의 사회참여라던가 사회개혁을 강조하는 때가 과거에 있었던가? 그러나 그런 강조가 과연 얼마나 사회를 구원하였는가? 한 권력에 대한 반항운동은 그에 대한 반동으로 인해 점점 어지러워 가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 필자가 보는 견지에서는 벽에 부딪쳤고, 얼마 안 있어 키를 돌릴 것으로 보인다. 웨슬레는 훌륭한 신학자요, 동시에 전도자로서 선교에 끼친 공헌과 사회개혁에 끼친 업적이 너무도 뚜렷하다. 이제까지 웨슬레의 선교운동의 특징을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았으나, 문제는 이제 우리에게 있다. 그는 훌륭한 신학으로 사회를 이끌었다. 또 그는 뜨거운 열정으로 그리고 온 세계를 향한 비전을 가지고 조국을 구했다. 우리는 선교개념을 정돈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확신을 회복하여, 사회도피적 고립주의나 이와 반대로 개인구원을 부정하고, 사회구원만 외치는 행위 곧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곡해와 불신을 지양하고, 성결의 역사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 요한 웨슬레의 생애의 개관
요한 웨슬레(John. Wesley)가 태어날 당시 영국은 청교도 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또한 합리주의의 물결이 계몽주의 형태로 표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토마스 페인에 의하여 불신앙의 사상이 영국 전역을 강타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설교는 냉랭하고 대부분의 도덕적인 내용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18세기에 영국에서 복음주의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인물 중의 한사람이 요한 웨슬레였다. 이 복음주의 운동이 발전되고 확장되어 결국에는 감리교회를 이루게 되었다.
요한 웨슬레는 사무엘(Samuel)과 수잔나(Susannah) 사이에서 19남매 중의 15번째로 1703년에 영국 엡워스(Epworth) 지방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설교자였으며 교회에서 충성된 봉사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웨슬레 가문의 계보를 살펴보면 그의 조부였던 바돌로메 웨슬레는 그의 집안에서 최초로 옥스포드에서 학업을 연마했다. 그리고 도체스터의 요한 화잇씨의 영향과, 결혼하여 사무엘을 낳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웨슬레의 부친이었다.
사무엘은 그의 나이가 20세가 될 때 그의 독립 교파를 떠나 영국 교회로 교직을 옮긴 후에 옥스포드 대학에서부터 칼리지에 급비생으로 입학 그는 기골이 장대한 쾌남아였다.
요한 웨슬레는 어렸을 적에 그의 어머니인 수잔나로부터 여러 가지의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에게 글씨를 쓰는 법, 논문 쓰는 법 등을 웨슬레는 어릴 적부터 철저하게 교육받게 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교육의 영향은 또한 그의 장년기의 집필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웨슬레의 가정은 넉넉하지 못했다. 항상 빈곤에 시달리는 생활을 하게되었고 그의 아버지인 사무엘 마저도 주위의 인심을 잃은 터이라 그의 가정 생활은 어려운 편이었다. 웨슬레가 어렸을 때에 그의 가정에 큰 화재가 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화재 속에서도 많은 그의 가족들은 단 한명의 부상자도 없이 모두 무사히 구출되게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웨슬레는 하나님께 감사했고 그의 설교에서도 이 구원의 사건을 많이 인용하곤 했다. 웨슬레의 아버지인 사무엘도 웨슬레의 교육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그의 재학 중에 보낸 서신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렇듯이 그의 유년 시절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10세 되던 때에 요한 웨슬레는 차터 하우스 스쿨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가 아주 어렸기 때문에 이시기는 그에게 있어서 상당한 어려움의 시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시기에 그에게 있어 어려움의 시기만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유명한 음악가인 헨델과 펩쉬를 만나게 되었고 또한 특별한 교제와 친분 관계도 가지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음악을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도 이루어졌던 사실을 알 수 있다.
1720년 첫여름에 차터하우스를 떠나 옥스포드에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 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그는 언술에 있어서도 뛰어났고 작문에도 상당한 소질을 소유하게 되었다. 1724년 웨슬레의 가족은 우릇으로 이사를 하게되었다. 물론 그 당시 역시 그의 가정은 부유하지 못했다. 이로부터 5년 후에 그는 링컨 대학의 특대 교우생으로 뽑히어 금전상의 어려움은 면하게 되었다.
1725년 웨슬레의 나이 22세 되는 원기 왕성하고 발랄할 때 그의 생애에 커다란 전환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이때에 자신의 장래에 대하여 번민하게 되었고 또한 심사숙고한 끝에 성직을 맡기로 결심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아직도 신의 불꽃이 희미하였으며 영적 경험을 사모하는 마음이 적었다.
그가 감명을 받은 책은 토마스 아켐피스(Tomas a Kempis,1380∼1471)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테일러(Jeremy Taylar,1613∼1677)의 "거룩한 삶과 죽음"이라는 책과 로우(William Low,1686∼1761)의 "중대한 부름"이라는 책과 "그리스도인의 완전론"이란 명저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또한 이러한 것들의 영향으로 1725년에 웨슬레는 그의 모친과 함께 "예정설"을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요한 웨슬레가 안수 받아 집사가 된 것은 1725년 9월 19일 주일 옥스포드에 있는 크리이스 처치 교회당에서 옥스포드 감독 요한파터에게서였다. 1726년 3월 17일 웨슬레는 링컨 대학의 특정 장학생이 되었다. 이로부터 25년 이상을 이 대학교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지냈다. 웨슬레는 또한 면학가였다. 링컨 대학에 있으면서 히브리어, 아랍어, 라틴어, 논리학, 윤리학, 철학, 물리학, 웅변학, 시가 신학등 그의 연구 방면은 상당한 범위에 걸쳐 있었다. 또한 그는 그 당시 웅변가로서도 상당한 명성을 떨쳤다.
1729년 웨슬레는 옥스포드 대학의 부름을 받아 다시 모교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당시에 그의 동생으로 챨스 웨슬레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웨슬레는 찰스와 함께 옥스포드 등에서 신성 클럽을 만들어서 성경 읽기를 구휼 운동에 참여했다.
감리회의 창설을 말할 때 요한 웨슬레를 생각하나 찰스 웨슬레의 공적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웨슬레는 처음부터 재능과 재질과 그의 영성을 인정받아 이 단체의 회장으로 취임되었다. 이들의 최초의 사업은 성경 연구였다. 이들은 일명 "신성구락"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리만큼 신앙의 경건함을 중시하였다. 이들의 모임은 보통 다음과 같은 일을 했다. 첫째 희랍어 고전문학을 연구했고 성경 공부를 한 뒤 간단한 저녁 식사로 모임을 마치곤했다. 이들의 첫 열매는 "구휼운동"이었다. 옥중의 사람들에게 부채자들에게 병자들에 그밖에 여러 가지 봉사 사업에 노력하였다.
이 작은 단체는 비록 해산되어 그 존재는 사라졌으나 성실과, 높은 이상과, 신의 은총을 겸한 이 세 청년 즉, 웨슬레 형제와 휫필드의 신앙과 생활은 처음에는 한 대학을 깨우쳤고, 그 다음에는 영국 전역에 믿음의 불을 일으켰고, 나중에는 바다를 건너 북미 대륙과 전세계에 거룩한 신의 불꽃이 일게 하였던 것이니, 이 불꽃이 처음 반짝인 곳은 경건한 청년 몇이 뜻을 합하여 모였던 신성구락부(The Holy Club)였다.
1735년 4월 25일 웨슬레의 부친인 사무엘은 72세의 일기로 일생을 마쳤다. 사무엘이 죽은 이후 엡윗교회의 목사직을 웨슬레가 맞았으나 끝까지 하지 못하고 더욱더 큰 꿈을 앉고 옥스포드로 돌아오게 되었다. 옥스포드로 돌아와 웨슬레는 동생 찰스 웨슬레와 휫필드(1714∼1770)와 함께 또다시 강력한 신앙의 불꽃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또한 1735년 10월 18일 오글레돕 장군과 함께 220톤의 "시몬즈"호를 탔다. 이때부터 그의 해외 선교는 시작되게 되었다.
첫번째 그의 해외 선교는 처음에는 좋았으나 착수한 지 만 2년이 좀 지났을 무렵 그에게는 불행한 연애 사건이 생기어 이 사건과 함께 1735년 12월 2일 캐롤리아로 가는 2,3인의 친구를 동반하여 귀국의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1738년 2월 1일 웨슬레는 본국에 도착했다. 결론적으로 웨슬레의 조지아(Georgia) 선교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조지아 선교의 일이 그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경험이었다. 그의 조지아 선교는 또한 여러 면에 있어서 많은 유익을 끼쳤으니 뒤에 오는 선교사들에게 겸비한 마음과 굳건한 의지를 가질 수 있게 한 점이라든지, 휫필드로 하여금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가 유력히 일할 수 있는 충동을 준 것이라든지, 뒤에 오는 카톨릭 선교사를 선도하여 북미 대륙에 동 교회를 설립함에 실패가 없게 한 점 등은 다 웨슬레 선교가 끼쳐 준 공헌이다.
그는 조지아 선교 후 휫필드의 경험을 살려서 야외 설교에 박차를 가했다. 이후 웨슬레는 브리스톤에서의 전도 활동에 큰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야외 설교에 참여한 많은 신자들은 웨슬레의 설교를 듣고 울부짖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는 이도 있었고 심한 경우에는 실신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케이커 교도들은 이러한 현상을 조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모두 성령에 인도하심에 의해서 이루어 졌음은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다. 웨슬레는 그 당시 영국 교회로부터 이단자라는 격렬한 말을 들었다. 하지만 웨슬레는 끝까지 자기는 영국 교회에서 분열되어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또한 영국교계에서는 웨슬레를 비난하는 공경하는 소책자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웨슬레는 끝까지 믿음으로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또는 자기는 사람들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면서 또한 유명한 "온세계는 나의 교구이다."라는 말을 힘차게 역설했다. 그의 말대로 웨슬레는 1724년부터 런던, 브리스톨, 웨일즈, 뉴케슬 등지를 순회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의 소식을 전하였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어렸을 적부터 정신적인 지주가 되셨던 수잔나 웨슬레는 위대한 종교 운동가를 낳고 길러낸 일 이외에도 웨슬레와 함께 전도 사업에 자기 몸을 헌신하였다. 또한 가난한 살림살이와 수다한 자녀들로 더불어 파란 많은 생애를 살다가 1742년 7월 23일 73세의 일기로 영원한 안식의 나라로 떠났다.
웨슬레의 전도와 설교는 결코 간단하고 손쉽게만 진행되지는 아니하였다. 도중에 많은 폭도들로부터 습격을 당하는가 하면 돌팔매질까지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악랄하고 과격한 폭도들까지도 웨슬레의 기도와 설교를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둘씩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실로 이러한 일들은 웨슬레를 통한 성령의 역사가 아닐 수 없었다.
또한 감리교 사에 있어서 저 유명한 그의 신도회(Society)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이고 상호 유기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하였기에 이 체계는 오늘날까지도 감리교회에 존속하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속회(Class meeting)이다. 이 속회 제도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1742년 브리스톨에서였다. 속회는 한 신도회를 보다 작은 단위의 집단으로 나누어 거기에 지도자 한사람 씩을 두어 지도 감독하게 한 것이다.
또한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전도인의 기본적인 성격은 물론 신앙이다. 하지만 지식의 함양도 전도인에게 있어서는 빼놓을 수 없는 기본적인 성격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리하여 1766년 리쯔회의에서는 '가장 유익한 것은 서적을 읽는 것이며 ……… 꾸준한 노력으로 아침 시간을 독서에 쓰라. 24시간 중에 적어도 5시간을 독서에 쓰라………독서에 취미를 기르라. 그렇게 못하겠거든 전도 사업을 그만두고 그대의 원직업으로 돌아가라'고 독서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또한 웨슬레가 말한 전도자가 갖추어야 할 점은 첫째 금·은등을 절대로 받아서는 절대로 안된다.라고 강력하게 역설하였다. 이렇듯 웨슬레는 그의 종도사업에 철저한 강령을 만들었다.
1769년에 북아메리카에 메도디스트교회를 창설하였는데 그때 나이는 이미 70고령에 이르렀다.
요한 웨슬레가 70의 고령에 이르렀을 당시 그는 노드경에게 자기는 매년 5천 마일의 여행을 하였으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웨슬레의 여행은 대개가 馬上旅行이었다. 그는 습관처럼 항상 말 위에서도 독서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길로 그에게 있어서 마상 여행은 즐겁고 낭만적인 여행은 결코 아니었다. 때로는 말에서 떨어져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또한 매섭고 세찬 바람에 살을 에인적도 있었고 눈으로 뒤덮인 산을 넘다가 눈구덩이에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웨슬레는 전도자나 설교자로서도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한 사회 사업가로서 저술가로서도 재주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70세의 고령의 나이로도 쉬지않고 주를 위해 끝까지 일을 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를 위해 헌신하였다.
1791년 3월 2일 오전 6시 88세의 생을 일기로 영원한 안식의 나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가 심혈을 기울여 쌓은 탑은 해와 달과 더불어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요, 그의 위대한 정신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여러 백만의 교도의 머리 속에 또한 가슴과 마음속에 오고오는 세대와 함께 남아 있을 것이다.
** 요한 웨슬레의 회심 동기와 체험
1. 웨슬레의 신학적 발전에 끼친 올더스케이트 체험의 의의 1738년 5월 24일 「그날 저녁에 나는 마지못해 올더스케이트(Aldergate)의 거리에서 모이는 집회에 나갔더니 어떤 루터의 로마인서 주석의 서문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9시 15분전쯤 하여 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일으키시는 변화를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 한분만을 의지한다고 느꼈으며 그가 나의 구원을 위해 죄를 없게 하시고 죄와 죽음의 법에서 구하여 주셨다는 확실한 증거를 받았다.」 이상은 웨슬레가 올더스케이트에서의 체험을 자신이 밝힌 글이다.
웨슬레의 생활과 그의 설교가 당시의 영국 국민에게 끼친 영향을 생각할 때 그가 그날로부터 그의 마음 전체를 웨슬레의 종교적 체험과 그의 생활은 물론 그의 사상의 분기점이 된다. 거기서 그는 처음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의 참뜻을 배웠기 때문이다.
올더스케이트가 이에 앞서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에서 웨슬레가 진정으로 배운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믿음을 가지게 될 때 사람은 내증을 얻게 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 안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죄를 범함으로써 그 귀한 믿음을 소멸시킨다면 낮이 있은 뒤에는 필연적으로 밤이 오듯 하나님의 교제는 끊어지게 되고 내증도 가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2. 웨슬레의 초기 의인관의 붕괴 웨슬레의 초기 의인관을 와해시킨 주요한 요인은 그 자신 안에 있었으며 이것은 불확신, 의심, 때로는 순수한 공포의 형태로 나타났다. 자신의 구원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었으며 영원한 애정도 그 자신의 활동과 자신의 마음의 의향과 자신의 의지력으로 능히 좌우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놓였다고 확신하여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어떤 도덕적인 퇴보나 영적인 패배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신과 자기 의존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이와같은 믿음의 관점에서 볼 때에 이상을 조금이라도 낮추거나 실제적인 성취를 이룩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비참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구원 자체가 근거한 바로 그 기초를 파괴하여 버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비와 행위와 경건한 예배를 통하여 이와같은 자신을 언제나 굳게 가졌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조지아 선교시 그는 어떤 어린이에게 세례 베풀기를 거절하였다. 그 이유는 어린애의 양친이 머리에 물을 끼얹는 일에 반대하였기 때문이었다. 물로써 세례를 주는 것은 병자에의 안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경우에 있어 행해지는 영국 교회의 법이었던 것이다. 그가 서버나의 어떤 여자에게 반하여 그녀와 결혼하기를 간청한 후에도 그 문제를 모라비안 교회의 장로들에게 물어 보았다. 장로들이 그들의 결정에 따르겠는가 하고 웨슬레에게 물어 보았을 때 그는 그 결정이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하면서 "예, 따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웨슬레는 언제나 자신의 영적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영적 발전에 위함을 주거나 방해를 주리라고 생각한 그 어떤 것도 조심스럽게 경계하였다.
그의 미국 항해와 조지아에서의 목사 생활과 아메리카 토인들과의 접촉으로서 그는 비로소 그가 주장한 교리가 부적당함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보라 내가 가난한 사람에게 밥을 주기 위하여 내 있는 힘을 다하였고 모든 사람들보다 더많은 수고를 하였다. 나는 내 친구나 명예나 안일이나 나라까지도 다 내버렸다. 나는 생명을 내걸고 외국 땅을 헤매었으며 몸을 골짜기에 내 맡겼고 뜨거운 열에 태웠고 노고와 피로에 지치고 여위었으며 또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내 몸을 내어맡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들이실까 내가 지금까지 행한 모든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 수가 있을까? 은혜 받는 온갖 수단을 언제나 쓴다면 가능할까? 나는 나 자신을 알지 못한다. 내가 사람을 감화시키는 힘이 강하고 도덕적 의는 책망할데가 없는가? 기독교의 모든 진리에 대한 합리적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이 모든 것을 인하여 내가 그리스도 인의 거룩하고 성스러운 특색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요 우리가 율법과 계명을 지켜야 한다면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것이 되고 정당하고 선한 것이 되지만 믿음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배설물과 같은 것이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기에 합당할 뿐이다."
그러면 믿음과 행위가 구원을 얻는 방법이 아니면 그 진정한 방법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3. 모라비안 교도의 영향 대서양 횡단 여행을 하는 도중에 웨슬레는 처음으로 모라비안 경건 주의자들과 접촉하였다. 그는 그들의 품행, 겸비, 인내성, 욕설을 참는 마음 등이 매우 신중함을 발견하였으며 특히 용기 있고 아무런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지 않음을 보고 탄복하였다. 웨슬레는 모라비안 교도들이 화평과 즐거움 속에 살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 교회의 원시적 소박함과 그들이 죽음을 태연하게 달게 받음을 보았다.
그가 조지아에 도착한 후에 스팽겐베르크(Augustus Gottlieb Spangenberg, 1704∼1792)가 자신의 입으로 그의 옛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하실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無知蒙昧하다. 나는 어린아이다. 내 아버지께서 잘 아시니 그가 부르실 때면 언제 어디라도 갈 각오가 있다." 그가 조지아에 있을 때 스팽겐베르크가 물었다. "그대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성령의 증거를 마음 가운데에 가졌는가? 하나님의 성령은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그대의 영에게 증거 하던가?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가?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대를 구원 하셨다는 것을 아는가? 그대는 그대 자신을 아는가?"라고. 지금까지 웨슬레는 자신의 영적 생활의 실태를 이렇듯이 심각하게 검색하는 질문을 받아 보지 못하였다. 이 문답이야 말로 웨슬레의 조지아 선교에 앞선 항해 중에 얻은 최대의 수확이 있다고 할 것이니 스팽겐베르크 목사와의 대화 중에 웨슬레의 마음속에서는 섬광이 한번 번쩍이었다.
그가 영국으로 돌아와서 옥스포드에 있을 때 피터뵐러(Peter Bohler)는 그에게 "나의 형제여 그대의 철학은 더욱 세련되어야 하겠습니다."라고 일러주었다. 그때부터 약 2주일 후에 뵐러는 "믿음을 가질 때까지 믿음을 전하라 그러면 믿음을 얻을 것이니 그 다음에는 그대가 믿음을 가졌으므로 그 믿음을 전할 것이다."고 권면하였다. 영국 교회에서도 역시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공로로 힘입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모라비안 교도들은 이것을 좀더 인격적인 면에서 파악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전체로서의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셨으나 중요한 것은 그가 한 인격으로서 그대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이다."라고 가르친다.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은 사람이 의로운자로 받아들여지고 죄책에서 자유해졌다고 하는 법적인 선고 이상의 것이다. 이제는 죄가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나누어 놓지 못한다. 도리어 죄만이 사람과 하나님의 어린양을 감동시켜 사람을 긍휼히 생각하고 양의 피를 힘입어 사람을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심과 동시에 우리를 성화 시키고 모든 불의로부터 우리를 성결하게 하신다. 모든 것은 우리 위에서 그리고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역사이신 까닭에 우리 자신이 하는 일이란 하나도 없다. 1732년 1월 24일 헌 후드 교회에서 Upper Lusayia의 회장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졌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만을 언제나 강조하였습니다. 우리가 올바로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이루어지리라는 것만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역설합니다."
4.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 웨슬레는 그의 인격이 여하하고 또 그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는지를 자문자답하기에 지쳐 버린 나머지 하나님께서 구원의 조건을 제시하실 뿐 아니라 인간 안에서 구원을 실제로 이루신다고 모라비안 교도들도 주장한 바 있는 종교 개혁자의 교리에 귀의하게 되었다. 그가 1738년 5월 24일 밤 루터의 로마인서 주석의 서문을 듣고 루터의 사상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는 언제나 선한 행위를 할 때마다 불쾌한 감을 가지거나 억지로 하게된다는 것을 자기 자신의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기에 사람은 행위를 가지고 결코 선을 쌓을 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하여서는 다른 곳으로 가서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믿음에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그 믿음은 인간 안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이시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살아 있는 확고한 신념이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하고 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천만번이라도 거기에 목숨을 내걸 수가 있다.
이와같이 하여 웨슬레는 올더스케이트는 중생의 체험을 한지 18일 후인 1738년 6월 11일에 옥스포드 광장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란 제목의 유명한 설교를 하였다. 또한 그가 모라비안 교회의 중심지 헌 후드에서 순례 여행을 끝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바로 그 다음날인 1738년 9월 17일주일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고 죄인들에게 회개할 것을 외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감리교회 부흥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그 이유는 감리교라는 이름이 1729년부터 웨슬레와 그의 옥스포드 클럽 동료들에게 불리워졌고 후년에 웨슬레 자신도 그 해를 사회적인 현상으로서의 감리교회의 기원 연대로 정하였으나 1738년에 웨슬레가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외치기까지는 감리교회의 세력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거나 혹은 감리교회 회원 외의 사람들에게는 별로 영향 준 바가 없는 하나의 적은 클럽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지극히 작은 것 하나도 받을 가치가 있는 한 가지 선행도 할 수가 없고 어떠한 품격도 갖출 수가 없다는 것을 웨슬레는 그의 설교에서 언제나 역설하였다. 죄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역사에서 오는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실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란 "말로 다 할 수 없는 선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는 말밖에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이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죄를 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위는 행위 자체가 악이다. 이는 썩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힐 수 없으며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타락하여 사악하기 때문이다. 선한 행위가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5. 회심에의 결론 웨슬레에게 있어서 은혜는 구원의 근원이요 믿음은 그 조건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하나님에게서 부터만 오며 하나님만이 양자의 유일한 원인이 되신다. 모라비안 경건주의의 영향과 올더스케이트에서의 그 자신의 체험의 결과를 웨슬레는 새사람이 되었다. 즉, 그의 믿음의 중심이 변하여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며 모든 인생을 자신의 영적인 자아 확장으로 평가하던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전 인류를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의 사랑의 대상으로 보고 사랑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그의 종교의 중심이 변함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의인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인간이 언제나 두려움과 떨림으로 선행을 쌓는 악전고투를 하여야 구원을 성취할 수가 있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게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의인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창발적으로 역사 하시는 행위이며 인간에게 값없이 주시는 믿음의 선물이며 죄인을 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새로 짓는 것이라고 웨슬레는 생각했다.
인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임재하시게 되면 의롭다 함을 받는자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자는 참으로 중생하게 된다. 그는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생활을 하게된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게 감추어진 새생활이다. 의인의 교리는 이기적이고 연약하고 천한 본연의 인간에게 호소하게 하여 인간은 여기서 힘을 얻어 그가 원하는 이상적인 인간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6. 웨슬레 회심의 의미 (1) 웨슬레의 회심은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말한다. 앞에서 말한 웨슬레의 가문이 주는 신앙적 유산과 신학적인 그의 신앙에 확신을 주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성직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내적인 갈등과 공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가 미국 조지아 주에 인디안 선교를 위해 떠날 때에도 실상은 자기 자신의 변화를 기대하였으나 인디언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회심하지 못하고 허탈한 상태로 영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런던 올더스케이트의 작은 집회에 참가하여 마음이 뜨거워짐을 경험하였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님으로 영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오랫동안 기독교적 분위기에서 살고 지도자로 자처하였지만 그리스도가 자기를 구원하기는 주님으로 자기의 삶의 중심으로 믿고 고백하며 실천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처음으로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의 새로운 자기 발견이고 자기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의 전향을 의미한다.
웨슬레는 이 회심의 경험에서 멈추지 않고 여러번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고 거듭나므로 그리스도처럼 완전에 이르는 신앙적 훈련과 헌신을 일삼았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강조하였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이것을 기독교 사상의 극치로 본 것이다.
그의 변화는 자기 중심 곧 자기 교만과 신앙적 회의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으로 모시는 인격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변화된 인격의 신앙을 형성해야 하겠다. 인간 중심주의 권위주의 배타주의 형식주의를 떨쳐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해 살아가는 말과 행동의 일치를 지향하는 인격적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다.
(2) 웨슬레의 회심은 새로운 교회를 탄생케 하였다. 당시 영국교회는 상류층 중심으로 제도화되고 경직된 상태로서 생명력을 잃는 시체와도 같았다. 그러므로 산업 혁명의 물결에 따라 밀려다니는 하층 구조에 속한 사람들은 교회로부터도 소외 당하고 있다. 이제 회심을 체험한 웨슬레는 제도적 교회가 그리스도의 빛을 잃었을 뿐아니라 소외 계층의 정신적 신앙적 요청에 응할 수 없는 불구자임을 실감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처음에 영국 교회 자체를 복음으로 새롭게 하기 위하여 학문과 토론과 목회적 실천으로 노력을 경주하였으나 그 결과는 오히려 영국 교회부터의 파면이라는 처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국 교회와의 관계를 지속하려고 속회와 신도회에 참여하는 교인들에게 반드시 모교회에 가서 성만찬을 받도록 권고하였다. 이와 동시에 그는 속회와 신도회에서 신앙 훈련을 철저하게 실천하였다. 훈련받은 평신도 지도자로 하여금 속회의 구성원들의 신앙을 지도하고 생활 지침을 가르치며 그들의 문제에 대한 상담자가 되게 했다. 뿐만 아니라 교육받은 목회자가 부족하므로 영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집회소에서 평신도 지도자들을 훈련시키는데 그 중에는 여성 지도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웨슬레와 같은 시대에 유명한 부흥사 휘트필드가 있었는데 그는 웨슬레보다 부흥 운동을 먼저 시작하였고 인기도 대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향은 당대에 끝이 났고, 웨슬레의 종교 개혁은 오늘도 그 빛을 발하고 있다. 그 이유는 웨슬레는 평신도 훈련에 전력투구하였고 휘트필드는 스스로만 활동하였기 때문이다. 잘 훈련된 평신도는 사회의 각분야에 흩어져서 복음의 선교사로 열심히 활동하여 생기 발달한 감리교회를 창설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교회가 미국교회를 낳았고 우리나라 감리교회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3) 웨슬레의 회심은 새로운 사회 변화를 초래하였다. 당시 영국 사회는 엄격한 청교도 윤리에 대한 반작용으로 윤리적 부패가 극에 달하였는데 상류 계층일수록 더욱 심하였다. 또한 초기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착취가 난무하므로 노동자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절대 빈곤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유아 사망율이 최악의 상태였다는 것과 노동자의 평균 수명이 30세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 해주고 있다.
요한 웨슬레는 직접적으로 자기 자신의 런던의 교회에서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고아원과 진료소를 개설하고 신용협동조합과 섬유 공장을 운영하였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을 위한 세금 감소와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사회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평신도들로 하여금 각자가 활동하는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양심운동, 인간화운동,민주운동을 일으킴으로써 영국 사회 전체를 구원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렇듯 웨슬레의 위대함을 그리스도 안에서 인격을 변화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영국의 사회와 역사를 새롭게 하도록 스스로 미래의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크리스천은 선구자적 예언자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 진정한 기독교인 존 웨슬레
누가 그리스도인이며, 참된 기독교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관하여 너무나 오랫동안 수많은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이 논쟁의 요지는,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며, 무엇이 진정한 기독교인가'였던 것입니다. 진정한 기독교란 무엇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게 하는, 가장 확실하고도 가장 접근할 만한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러한 논쟁이 끝나기를 바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고찰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누가 그리스도인입니까? 이 용어는 무슨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까? 이 말은 너무 오랫동안 함부로 사용되어 와서, 별 뜻이 없게 보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보다 더 나쁜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 말은 가장 사악한 위선과 가장 탐욕스러운 부도덕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 왔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인간 본질에 치욕이 될 만한 사람들의 손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구출해 내야할 때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이름을 올바르게 소유한 자란 과연 어떤 양식의 사람인지를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할 때가 바로 이 때입니다.
Ⅰ. 참된 그리스도인 1. 참된 그리스도인은 겸손해지지 않고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땅 위에 사는 인간과 하늘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 사이의 거리감을 그는 깊이 느낍니다. 자신이 정말 미미한 존재임을 알고서,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그는 무릎을 꿇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하찮음, 무지함, 그리고 어리석음을 그는 의식하고 있습니다. "오 하나님, 인간은 무엇입니까? 나는 무엇입니까?" 하며 그의 마음 속으로부터 북받쳐 올라 외칠 수 있는 이가 참된 그리스도인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존재와 이에 따르는 모든 축복을 위해, 선(善)하신 아버지께 의존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감지합니다. 그가 소유한 모든 자연적인 그리고 모든 도덕적인 재능의 덕을 그는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흔히 부나 지혜, 용기, 공로로 귀결되는 모든 것들을 그는 하나님의 소유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인내하면서 뿐만 아니라 감사에 넘쳐서, 하나님의 뜻으로 보이는 것은 어느 것에든 그는 기꺼이 응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의 존재의 모든 것,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지혜로우시고 은혜로우신 처분에 기꺼이 내어 맡깁니다. 그의 마음의 지배적인 소원이란, 전적으로 순복하는 가운데 그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께 가장 애정이 깃든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감사에 넘치는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존경심을 창조하며 또한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 드릴 어떤 성향, 행동, 말, 혹은 생각도 허락지 않을 열렬한 소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의 생명, 호흡, 그리고 모든 것의 소유자이신 그의 사랑하는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기를 그는 끊임없이 바랍니다.
2. 이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향한 가장 강한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든 선의 원천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갖습니다. 기쁨이나 고통, 삶이나 죽음 그 어떤 것도 흔들 수 없는 믿음을 그는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뢰는 나태함이나 게으름을 일으키기는커녕, 가장 왕성한 근면으로 그를 내몹니다. 이 믿음이 그를 그의 모든 힘을 다해 하나님께 복종하게끔 합니다. 고로 그는 결코 마음이 나약해 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바를 행하는 일에 그는 결코 지치지 않습니다. 가장 받으실 만한 예배란 하나님을 닮는 것임을 그는 알고 있으므로, 본받을 만한 하나님의 모든 완전을 자신 속에 옮겨 놓으려고 그는 끊임없이 힘을 씁니다. 특별히 그는 하나님의 정의, 긍휼, 진리를 나타내려고 애를 씁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기억하면서, 그리스도인은 같은 모습(likeness)이 됩니다. 그는 그의 이웃에 대한 사랑, 즉 한 파벌이나 당파에 고착돼 있지 않는 우주적인 사랑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의 사랑은 사사로운 의견들이나 예배형태에 있어 그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에게로 제한되지는 않습니다. 그 사랑은 혈연이나 결혼에 의해 그와 관계되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된 것이 아닙니다.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나 혹은 우정으로 인해 그로부터 사랑 받는 사람들을 위해 그 사랑이 보존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사랑은 온 피조물에 미치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닮았습니다. 그 사랑은 모든 인간의 경계선을 넘어 치솟아, 이웃과 문외한들, 친구와 원수들까지 포용합니다. 선량하고 점잖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불순종하고, 악하며, 감사할 줄 모르는 이들에게도 이 사랑은 주어집니다.
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사람들 하나 하나를 다 사랑합니다. 어떤 장소나 어떤 나라에 속하였던 간에, 그는 인간이 낳은 모든 자녀들을 다 사랑합니다. 그의 우주적인 사랑은 그의 특별한 사랑에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그는 그의 친척, 도움을 받는 사람들, 친구들, 그리고 그의 조국을 향한 각별한 사랑을 지속합니다.
모든 인류를 위한 이 사랑은 그 자체에 있어 관대하며, 사심이 없습니다. 자신의 이익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며, 이득 혹은 칭찬을 고려한 동기를 지니지 않습니다. 이 사랑은 사랑하는데서 비롯된 즐거움조차 무시합니다. 사회적 사랑, 만일 그것이 이웃사랑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자기-사랑(가장 허용할 만한 종류의 것이라 하더라도) 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그리스도인은 경험에 의해 압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지도하심을 받는다면, 서로 간의 사랑은 상대방에게 힘을 더하여 주어서 결국 그들이 합쳐져 결코 나뉠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스도인은 확신합니다.
3. 이 우주적이며 사심 없는 사랑은 모든 올바른 감정을 산출합니다. 그 사랑은 친절함, 부드러움, 달콤함, 인간애, 예절 바름과 상냥함을 낳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모든 사람들의 덕행(virtues)을 보고 기뻐하게 하며, 그로 그들의 행복의 한 부분을 경험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 사랑은 모든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들의 연약함을 동정하도록 그리스도인을 돕습니다. 이 사랑은 겸손과 겸양, 신중함, 평온함, 성품의 평정을 창조합니다. 이 사랑이 질투심과 의심이 없는, 관대함과 개방성과 솔직함의 근원입니다. 이것은 순수함을 산출하고, 또한,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며 우호적인 것은 무엇이나, 믿고 바랄 수 있는 자발성을 불러일으킵니다. 뿐만 아니라, 악에 의해 결코 정복당하지 않고 오히려 선으로 악을 정복하는 엄청난 인내심을 그 사랑은 촉진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사랑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진리에 대한 확고한 생각, 완전한 단순성 그리고 참된 성실성을 가지고 사귐을 갖게끔 합니다.
진실로, 그리스도인은 그 속에 간계가 없습니다, 그는 단지 정의와 진리에 반대되는 모든 표현을 삼가는데 단순히 만족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있던 없던, 그는 사랑 없는 모든 말을 안하려고 노력합니다. 그의 모든 교제의 목표는 지식과 덕으로써 자신을 개선하는데 있든지, 아니면 그가 사귀고 있는 사람들을 예전보다 더욱 현명해지고,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 지도록 만드는 데 있습니다.
4. 이같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모든 올바른 행동을 산출합니다. 그 사랑은 모든 사회적 책임을 열렬하고도 견실하게 이행하도록 그리스도인을 지도합니다. 그는 그와 관련된 어느 것에서나 온 정성을 다합니다. 그는 그의 친구나 그의 국가 그리고 그가 속해 있는 어떤 특별한 공동체에 대한 그의 의무를 완수합니다. 그와 같이 몰두하는 정신은 어떤 이를 해치거나 슬프게 하는 일을 기꺼이 막아버립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그로 하여금 정의와 자비를 고르게 실천하도록 인도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한 모든 선을 이행할 것을 그에게 요구합니다. 이 사랑은, 삶의 모든 처지에서, 만일 그가 꼭 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면 그 때에 남들이 그에게 해 주기 바랐을 그것만을 남들에게 행하도록 그를 꾸준히 헌신케 만듭니다.
5. 그리스도인은 남에게 손쉬운 존재인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역시 손쉬운 존재입니다. 그는 교만, 분노, 그리고 격렬하고 불규칙한 아집으로부터 자유합니다. 그는 더 이상 질투나 악의 혹은 불합리하고도 고통스런 욕망에 의해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더 이상 감각적인 쾌락의 노예가 아니며, 지금은 그의 몸과 마음을 다스릴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인생역정을 계속해서 차분함과 절제와 순결함으로 즐겁게 엮어 나갑니다. 그는 모든 것을 적소에 사용할 줄 알고 있으며,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상상의 저급한 쾌락을 딛고 일어섭니다. 그리스도인은 더욱 영구적인 쾌락을 갈망합니다.
그는 결코 평판의 노예가 아닙니다. 세상적인 갈채는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는 마음이 요지부동입니다. 그는 아무 칭예도 구하지 않기 때문에,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비난이 그를 괴롭히지 않는 것은, 자신이 고의로는 죄 지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것들의 주님이신 분으로부터 인정받고 있음을 압니다.
또한, 그는 궁핍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땅덩어리와 그 땅의 소산이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지를 압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어떤 이에게 그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꺼리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압니다.
그가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그에게 진정 유익이 되지 않는 한, 고통은 허락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보내졌을 때에, 과거에서처럼 그 고통을 견딜 힘을 지니게 될 것을 그는 압니다.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으로 더불어, 그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썩지 않고 불멸할 몸으로 부활하기까지 그 부패할 몸을 먼지 속으로 떠나 보내는 것을 그는 기뻐할 것입니다.
영예로움 가운데 있든 수치가운데 있든, 풍족하든지 궁핍하든지, 평안하든지 고통 중에 있든지,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6.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기에 행복합니다. 그의 하나님은 이해력이 뛰어난 신이시며 만물의 주가 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인간이 맹목적인 우연이나 냉혹한 필연성의 산물이 아님을 압니다. 하나님은 무한히 지혜로우신 분이심을 충분히 확신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행복해 합니다. 그가 확신하기는,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을 지니셨기에 그 분의 모든 지혜로운 계획을 실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가 알기는, 하나님은 무한히 선하셔서 그 분의 모든 능력을 그 분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펼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변의 정의, 그 분 자신 안에서의 모든 충분성, 그리고 흠잡을 데 없는 하나님의 완전함을 숙고해 보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행복을 끊임없이 증가시킵니다.
그 외로 더 많이 받은 축복은, 그가 그의 존재를 깊이 생각해 볼 때, 그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줍니다.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그의 손으로 이루신 모든 것들을 계속해서 돌보고 계심을 알고 그는 기뻐합니다. 이렇게 기뻐하면서, "오 주님, 온 세상에 있는 당신의 행적은 얼마나 놀라운지요. 당신께서는 하늘들 위에 당신의 영광을 두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가운데, 그는 마음 속으로부터 사랑과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마치 보좌에 앉으셔서 모든 것을 잘 다스리시는 것 같은 주님을 그는 눈으로 봅니다. 그는 온 피조물 위에 펼쳐 있는 보편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지켜봅니다. 즐거운 관객으로서, 그는 모든 것들 안에 있는 이러한 섭리의 결과들을 바라봅니다. 특이한 모든 존재들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총체적인 통치의 지혜와 선하심을 그는 살펴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한 인간이 온 우주인양 모든 사람을 하나 하나 살피시면서, 한 사람에게 하시듯 온 우주를 주재하신다는 것을 그는 압니다. 그의 삶 내내 그에게 있었던 선하심의 여러 가지 흔적을 돌아볼 때, 그는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그가 경험했던 모든 것은 숫자나 무게나 단위로 일일이 다뤄질 수 없음을 그는 압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고찰해 봄으로 해서, 영혼의 승리감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모든 행동이 결국 영원에 이르게 되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유한 행복은 하나님께서 그를 각별히 사랑하신다는 뚜렷한 확신에서 옵니다. 그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항상 그와 함께 계십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은 결코 그를 떠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늘에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과 지상에서 그가 바랄 것은 하나님밖에 없음을 그는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당신의 형상을 새겨 넣으셨음을 그는 너무도 잘 압니다. 그의 육체와 그의 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그는 원합니다. 머지 않아 그는 죽을 것이고, 게다가 하나님의 팔에 안겨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습니다. 죄와 고통을 떠나게 될 때에 그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는 마음이 흥분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명백하고도, 꾸밈이 없는 그대로의, 진정으로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차분한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 이상의 바람직하거나 사랑스러운 특질을 생각해 낼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이러한 특질의 소유자가 되길 바랍니까? 당신은 여기 표현된 사람과 조금이라도 비슷합니까? 당신이 그와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당신은 압니까? 만일 당신이 그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만일 당신이 전적으로 그러한 사람이라면, 당신은 그 이름에 어울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Ⅱ. 진정한 기독교 1. 참된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이처럼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진정한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고려할 수 있게 됩니다. 진정한 기독교란 교리의 체계나 조직이라기보다는 영혼의 한 원리입니다. 전자의 의미로 볼 때, 기독교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특질을 묘사하는 교리의 체계입니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 같은 특질이 주어질 것임을 약속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획득할 방법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모든 부문에서 그리고 가장 생생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인의 특질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의 핵심들은 구약의 여러 곳에서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요지들은 신약에서 완성되었는데, 그것도 다시 다뤄지고 마무리된 하나님의 업적으로서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이나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서 이러한 요점의 개요들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러한 특질이 당신과 나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약속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획득할 때까지 안주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구약과 신약에 이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신약은, 결국, 모두가 한 약속입니다. 신약에 있는 기독교에 관한 모든 묘사 역시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지시를 따르는 한 명령입니다 ;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약속들을 유업으로 받을 자들을 본받는 자 되시요." 모든 명령은 한 약속을 강요합니다.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기록하리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쓰여진 이 말씀은, 내가 해야 할 것을 지시하신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하실 것에 대한 약속인 것입니다. 그 말씀은 구약에 기록된 말씀과 정확히 같은 뜻의 표현인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이러한 특질이 정말로 약속되어 있다는 사실은, 신약을 주의 깊게 읽는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관찰될 뿐 아니라 쉽게 드러납니다. 이러한 특질은 복음의 모든 묘사나 명령 하에 명백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이 약속들에 도달할 수 있는 지를 말해 줍니다.
2. 이 믿음은, 말들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은, 단순한 한 의견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비록 그 의견들이 참되다 할지라도, 일련의 많은 의견들은 아닌 것입니다. 꿰인 구슬이 기독교인의 거룩함이 아닌 것처럼, 꿰어 놓은 의견들이 기독교인의 믿음은 아닌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믿음은 어떤 의견에 대한 동의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세개 혹은 스물 세개의 신조에 동의할는지 모릅니다. 그가 이해하는 한에 있어서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에 동의할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그에게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복음에 대한 믿음이란, 불멸의 성령께서 사람의 몸 안에서 행하신 능력이란 말로 표현됩니다. 믿음이란 영의 세계, 즉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간파하는 능력입니다. 믿음이란 육적인 감각에 의해서는 감지되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바로 적절히 이해된 그리스도인의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의 사역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화해되었다는 - 우리 마음에 주어진 신적인 증거 혹은 확신입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위하여, 은혜로우셔서 우리와 화목하신 아버지께 서로 떨어질 수 없도록, 우리가 연합되었다는 확실한 신뢰인 것입니다. 특히,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영원한, 모든 좋은 것들을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연합되어 있습니다.
만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을 감지하는 것만을 위해서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얼마나 바람직합니까? 모든 생각할 줄 아는, 사려 깊은 모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모든 것들에 대해 더욱 광범위한 지식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에 관한 커다란 확실성과 그것들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그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영원으로부터 빛을 들어오게 할 수 있는 열려진 창문을 원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그렇게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물질적인 것에 비해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이 그에게 너무 적음을 인간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희미하고도 어렴풋이 보고 있음을 그는 깨닫고 있습니다. 그것이 불완전하며 분명히 감지할 수 없기 때문에, 신에 관한 그의 견해는 더더구나 수수께끼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영원한 세계를 파악하려는 인간의 갈망을 충족시켜 줍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에 관한 더욱 광범위한 지식을 사람에게 제공합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가장 충만한 확실성과 증거로써 지금까지 눈으로 보지 못하였고 귀로 듣지 못하였으며, 가장 밝은 빛 속에서도 마음으로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사람들에게 알게 해 줍니다. 이런 특혜를 알진대, 누가 그러한 믿음을 바라지 않겠습니까? 믿음에 의해 이러한 지각에 도달할 뿐만 아니라 거룩함과 행복의 약속이 성취되는 데에도 이르게 됩니다.
모든 기독교인은 믿음이 그와 같은 것임을 발견하며 또한 그들이 믿음을 증언할 수 있다는 것을, 기독교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믿음을 통하여 이러한 것들이 그와 같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서 그것들을 체험합니다. 기독교가 약속하는 것이 우리 영혼 속에서 성취됩니다. 그것은 복음서에 약속된 모든 내적인 원리들의 완성입니다. 그것은 거룩함과 행복이며, 우리의 영혼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에로 솟아오르는, 평강과 사랑의 원천입니다.
3. 이 믿음은 참된 기독교의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역사적 전통이나 증거를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증거는 나름대로의 위치와 적당한 존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증거는 결코 우리 자신의 마음의 체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역사적인 증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약화되었다고들 일반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여러 시대를 지나는 동안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채색되었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도 마음의 이 내적 증거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2000년 전에 그러했던 것만큼, 지금도 강력하고 새롭습니다. 그 믿음은, 처음에서와 같이,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옵니다. 세월이 결코 이 흐름을 고갈시킬 수 없습니다. 이 흐름은 결코 끊기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증거는 아주 복잡한 성질의 것입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많은 그리고 여러 가지의 고려사항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깊은 연구와 이해력의 소유자들만이 그 증거의 충분한 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마음의 경험은 얼마나 평범하고 단순한지요. 그것은 가장 낮은 지적 상태의 수준에까지 도달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내가 아는 것은 한 가지, 내가 눈멀었었지만 지금은 내가 본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속에 살아 있는 믿음은 너무나도 명백한 하나의 논증이기에, 누구라도 그 믿음의 충만한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기독교 증거는 저 멀리에 서 있습니다. 그 증거가 떠들썩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말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강력한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그것은 너무 오래된 시간과 장소에서 수 세기에 걸쳐 왔던 것을 우리에게 설명해 줍니다.
이에 반하여, 내적 증거는, 언제 어디에 있던지, 모든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증거는 당신 곁에 있습니다. 만일 당신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이 증거는 당신 맘 속에 있습니다. 바로 이 속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그의 아들, 예수 안에 있습니다.
만일 모든 역사적 증거를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이 내적 증거를 지닌 그리스도인은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서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의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기독교에 관한 나의 내적 증거를 해칠 수 없습니다. 독재자가 순교자의 영혼을 해칠 수 없었듯이 말입니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 외적인 기독교의 증거가 희미해지고 방해받는 것을 허락하신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외적 증거에 의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그들 맘 속에서 빛나는 빛을 증언해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기독교의 전통적인 역사적 증거에 대항하여 모든 종류의 반대 이론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신 듯합니다. 지식과 지혜 있는 사람들이 그 역사적·전통적 증거를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증거를 계속해서 옹호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논증을 그 역사적 증거에 의존할 수 없음으로, 그들은 그들의 믿음에 관한 더욱 깊고 더욱 견고한 지탱근거를 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살아있는 믿음의 내적 증거 없이, 그들은 오랫동안 그들의 주장을 지탱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살아있는 믿음의 내적 증거를 얻지 못한다면, 그들은 싸움에서 패할 것입니다. 그들이 확신시키기 원했던 사람들은 짧은 시간 안에 길을 잃고 이신론(理神論)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4.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믿음이나 사랑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믿음의 내적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속죄 피를 통한 이런 관계 안으로 들어 온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 삶의 모든 처지에서 만족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궁핍하거나 고통 당하거나 죽을 때조차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거룩하지 않습니다. 자만과 분노와 어리석은 욕망을 초월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생활이 거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현대 기독교는 약간의 외적 준수를 갖춘 가운데 사사로운 의견들에 화제의 촛점을 맞춥니다. 많은 불가지론자들이 이런 자칭-그리스도인들 보다 더 심오한 도덕성과 정직성을 반영해 줍니다.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기독교라 일컫는 그 보잘것없는 미신으로 해서, 부끄럼을 당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죽은 기독교 그리고 영과 믿음과 사랑이 없는 그들의 공허한 형식으로 인해서 그들이 조롱 받게끔, 이성(理性)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만일 밖으로 내 보이는 것과 일치하는 것이 마음 속에 없다고 한다면 종교적인 겉치레란 정말로 하나님께 아무 가치가 없는 것임을, 이성은 그들에게 확신시킬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이 의식(儀式)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시도하는 동안은 그들은 단지 허공을 치고 있다는 것을, 보통의 이해력을 지닌 사람들조차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불가지론자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모든 사람들을 정복할 때까지 그들의 승리를 외치며 밀고 나아갈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이 알고 있지 못한 하나님께서 그의 전능한 사랑 가운데 일어 나셔서, 모든 의심자들의 마음을 정복합니다.)
오,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은 그 때가 지금이기를 얼마나 바라는지요. 모두가 다 그 위대하고도 소중한, 내적인 산 믿음에 참여하기를 그들은 얼마나 갈망하는지요. 다른 이들이 기독교란 용어를 어리석게 사용하는 것을 들을 때,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요. 사람들이 가장 깊은 지혜와 지고한 행복을 지니신 성령님을 광신으로 부릅니다. 참된 기독교를 무지라고 한다면, 그것은 참된 그리스도인 이외의 눈에는 경멸적이겠지요. 참된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경멸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듯, 그는 의심하는 이들을 사랑합니다.
5. 내적 기독교는 그것을 받아들인 자들에게만 영향을 미친다고 어떤 이들은 솔직한 이의를 제기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내적 기독교는 우선 그것을 받아들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만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사물의 본질상, 그 내적 기독교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강한 증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내적 기독교는 어느 정도의 증거를 가져올 수 있고, 다른 이들에게 얼마간의 진실을 나타내 줄 수 있습니다. 이것에 관하여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참된 기독교가 적절히 이해될 때에, 당신은 참된 기독교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볼 수 있습니다. 참된 기독교와 비교해 볼 때, 바람직한 것이란 아무데도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참된 기독교를 약속하고 있고 또 그것이 믿음에 의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다음으로는, 기독교의 본질적 가치 때문에 기독교인의 믿음이 얼마나 바람직한지를 사람이 명확히 볼 수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덕과 행복에 도달하려고 힘을 쓰면 쓸수록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의하지 않고는 그것들이 획득될 수 없음을, 당신은 더욱 더 확신케 될 것입니다. 당신의 개인적 경험이 충분한 증거입니다. 이 증거를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끝으로, 만일 당신이 살아있는 믿음의 내적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은 데, 이러한 기독교의 덕의 어떤 것을 획득할 수 있다고 당신은 확신할 수 있습니까?
자 이제 우리는 유용한 내적 증거로서의 이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과거엔 불행했었지만, 지금은 행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 진리의 강한 증거입니다. 이것이 한 개인에 의해 경험될 때까지, 타인들의 경험도 유효한 증거만큼 강력합니다.
당신이 지금 보는,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당신의 증거로 의지하시요. 그러나 그들이 견지하는 의견들을 의지하지는 마시요. 이 점을 놓치지 마십시요. 성경이 약속한 바를 참된 그리스도인은 소유하고 있고 즐기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살아있는 믿음이 무엇을 행했는지를 볼 수 있으며, 그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모든 이들은 고백할 수 있습니다. 능력과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살아있는 믿음의 소유자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수 세월을 통해 그 분이 그렇게 하셨듯이. 미들튼 박사에게. 1749년 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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