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말이 너무 흔하게, 그리고 무의미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조건적인 사랑,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물론 말로만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사랑,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겠지요( 요일 3:18).
헬라어에서 사랑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네 가지로 분류를 하게 됩니다. 남녀간의 사랑인 '에로스', 가족간의 사랑인 '스트로게', 친구간의 사랑인 우정을 나타내는 '필리아',1)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곧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아가페'의 사랑이 있습니다.
요 21:15이하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에 보면 두 가지의 사랑이 나옵니다.
Jesus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Peter :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Jesus : 내 어린 양들을 먹이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Peter :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Jesus : 내 양들을 치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Peter :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Jesus : 내 양들을 먹이라.
이 대화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아가페'.2)로, 베드로는 '필리아'.2)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가페와 필리아 두 낱말에 대해서 별 차이 없이 사용된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3) 이를 구별해서 사용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후자의 입장에서 이 대화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① 첫 번째 대화
Jesus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아가페)하느냐?
Peter :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필리아)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아가페'적인 사랑, 곧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하느냐고 물었던 것인데, 베드로는 인간적인 사랑 곧 친구간의 우정을 나타내는 '필리아'로 대답을 했습니다.
② 두 번째 대화
Jesus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아가페)하느냐?
Peter :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필리아)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두 번째 대화는 첫 번째 대화와 거의 같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 질문은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가 아닌 예수님과 베드로 자신 사이의 관계를 물으셨다는 것입니다.
③ 세 번째 대화
Jesus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필리아)하느냐?"
Peter :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주님을 사랑(필리아)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세 번째 대화에서 예수님은 '아가페'로 묻지 않으시고 '필리아'로 묻고 계십니다. 즉 "네게 필리아의 사랑이라도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이 세 번째 질문을 어떤 영역본[Living Bible]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진정 나의 친구냐?(Simon, Son of John, are you even my friend?)". 이 질문에 베드로는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자신이 필리아의 사랑이라도 있는지 자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은 매우 이기적입니다. 대개 남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니, 어떻게 보면 참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이 진실한 사랑이지요. 그런데, 이 사랑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가페의 사랑, 그런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