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사람들은 모짜르트를 가리켜 음악사상 최고의 작곡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20세기의 위대한 물리학자 엘버트 아인시타인(Albert Einstein)은 "모짜르트의 곡을 못 듣게 되는 것이 죽음이다."라고까지 했으며,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천사들이 신을 찬미하려고 바하의 음악을 연주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 그러나 그들이 서로 모였을 때 모짜르트를 연주하면 신도 그 음악을 기꺼이 경청하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라고 모짜르트를 격찬했다. 어떤 이는 모짜르트의 작품을 가리켜 '모두 모범이 될 만한 것이며 인류의 귀중한 유산', '온 우주에서 모짜르트의 음악은 불멸의 것으로 남아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켜 줄만한 유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말 모짜르트의 음악은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켜 줄만한 유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의 음악 가운데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켜 줄 만한' 작품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음악도 '분명히' 있다. 왜냐하면 그는 한때 사탄숭배종교의 하나인 프리메이슨 단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이유로 프리메이슨에 가입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가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프리메이슨은 비밀결사 조직으로 루시퍼를 숭배하는 단체이다. 오늘날 프리메이슨 교도들은 어떤 특정의 정치, 경제 혹은 종교적인 강령을 마음에 품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만,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에서 많이 빗나갔다.
우리가 어떤 음악을 감상하려고 할 때, 무엇보다 먼저 해야할 일은 그 음악을 지은 작곡자에 대하여 알아보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 음악에는 작곡자의 사상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화란의 로크마커(Hans R. Rookmaaker)는 "모든 예술에는 중립이 없다"고 했다. 즉 그림이든지 조각이든지 반드시 그 시대와 작가의 사상이 표출되도록 되어있다는 것이다(신규인, p. 11 ; 2008. 02. 27 add).
작곡자가 어떤 음악을 만들고자 할 때, 그는 작품을 통해서 무언가 이야기 하려고 할 것이다. 그가 이야기 하려고 하는 내용은 다양하다. 그것은 어떤 상념일 수도 있고, 막연한 감정일 수도 있고, 단순히 마음의 상태일 수도 있다. 그가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이건 간에 그는 그 내용을 음악적 상징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특히 고전음악은 대중음악과는 달리 들어야 할 어떤 구체적인 내용이 있다고 한다. 음악에 있어 이야기 되는 것은 각 시대의 양식적 특징에 지배되기도 하고 또 작곡자 자신의 개인적인 음악적 믿음에 의해 좌우되거나 이 둘 사이의 긴장관계 속에서 결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있어서든지 그 이야기 되고 있는 내용은 음악적 어법의 방식에 의해 표출되고 표현된다. 다시 말해서 작곡자는 자신의 사상이나 믿음을 그의 음악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작곡자의 음악을 들을 때, 그 작곡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불교도인 작곡자가 곡을 지었다고 하자. 그가 지은 곡에는 작곡자의 의도이든 아니든 불교의 사상과 색채가 담겨 있을 것이다.
모짜르트의 오페라 작품 <마적>(Die Zauberflote, K. 620)은 그가 회원으로 있는 단체의 심벌과 이 교단의 특유한 의식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차 있는데, 이는 모짜르트의 프리메이슨에 대한 열렬한 헌신의 감정에서 샘솟는 것으로 그 비밀결사의식을 교묘하게 비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레퀴엠>(Requim in d minor K. 626)도 '우주의 위대한 건축가'를 위한 것인지 혹은 그리스도 만왕의 왕을 위한 작품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그의 작품 가운데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이후 즉 1784년 12월 14일 이후에 지은 곡의 상당수가 프리메이슨 사상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모짜르트의 작품이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켜 줄만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Ⅱ. 모짜르트의 생애
음악사상 최고의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음악의 신동으로 불리우는 모짜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는 1756년 1월 27일 당시 잘쯔브르크 대사교의 궁정음악가였던 레오폴트(Johann Georg Mozart)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 음악적 재능을 나타냈는데, 5세 때 벌써 작곡을 시작하였고, 8세 때에는 교향곡 제1번을 작곡하였다.
모짜르트는 6세 때부터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을 3년 반이나 여행을 하며 많은 견문을 넓혔으나 한창 성장할 시기를 여행으로 보냄으로써 체질을 약화시켰던 것이 후일 그의 생명을 단축케 한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1784년 12월 14일에 자유주의적 우애조직인 프리메이슨(Freemason)에 가입하게 되는데, 그가 1791년에 지은 오페라 <마적>에는 이 단체의 심벌과 이 교단의 특유한 의식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차 있다. 이 작품은 모짜르트의 프리메이슨에 대한 열렬한 헌신의 감정에서 샘솟는 것으로 그 비밀결사의식을 교묘하게 비유하고 있다.
관용을 표방하면서 프리메이슨주의는 종교적 신념에 상관없이 남자면 모두를 받아들였으며 보편적인 형제애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채택했기 때문에 다른 회원과 마찬가지로 모짜르트는 가톨릭신자인 동시에 프리메이슨 비밀결사의 회원이 되는 사실에 아무런 갈등이 없었다. 그러나 교회가 모짜르트와 프리메이슨주의를 몹시 심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결국 모짜르트는 교권반대주의자가 된다. 모짜르트는 임종하는 아버지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그들의 형제애를 예찬했다.
"지난 몇년간 최상의 진실된 사람들과 친구라는 가까운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이미지는 이젠 더이상 나를 두렵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실로 매우 편하고 위안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이 전정한 행복으로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사실을 배우는 기회를 허락하신 신께 감사합니다."
이후 모짜르트의 친구이자 동료인 프란츠 요셉 하이든도 프리메이슨에 가담했고 프리메이슨이었던 괴테는 모짜르트의 <마적>을 격찬하기에 이르렀다. "군중이 이 장관에서 즐거움을 맛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또한 처음보는 사람도 이 극이 갖는 고도의 의미심장한 면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모짜르트는 프리메이슨의 새로운 사상, 즉 평화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기법상으로도 바셋혼[테너 클라리넷]을 쓰는 등 프리메이슨의 영향이 눈에 띈다.
말년에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던 모짜르트는 발제크(Franz von Walsegg) 백작이 의뢰한 <레퀴엠>을 미완성으로 남긴채 1791년 12월 5일 0시 55분 35세의 일기로 그의 생을 마감했다.
모짜르트의 성격에 대해서 스위스의 음악가 한스 G. 네겔리는 '그가 이중 성격이었다는 것이 작품에 나타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모짜르트는 '목동'인 동시에 '투사'이며, '아첨꾼'인 동시에 '무모한 자'라는 것이다. "모짜르트에게 있어서는 부드러운 선율에 때때로 날카롭고 신랄한 음이 들어가 우매함과 광폭한 바람이 교차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알프레드 호이스라는 비평가는 "모짜르트 작품에 있어서의 악마적 요소"(1905)라는 심리학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모짜르트의 정열적인 성질의 중요한 특색은 성격상 완전히 어울리지 않을 때에 크고 정열적인 높아짐이 나타나는 일이다. 이것은 '악마적인 것'으로 그 성격상 기대되지 않을 때에 돌발적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이중 성격은 그의 여성 편력에도 나타나 있다. 그는 언제나 여성을 이상화하고 동경하는 한편, 자기의 감각적 관능의 욕구를 채워주는 육감적인 여성에게는 약한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한편, 모짜르트의 사인(死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의 사인으로는 첫째, 독살설이 있다. 당시에 모짜르트의 사인에 대해서 프리메이슨의 단죄를 받아 독살되었다는 설이 한 동안 유력했었고 오늘날도 그걸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이유는 모짜르트가 그의 오페라 작품 <마적>속에서 프리메이슨의 비밀을 폭로했기 때문에 프리메이슨의 단죄를 받아 독살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엔 아무도 <마적>을 프리메이슨의 비밀을 폭로한 배신행위라고 해석되지 않았다. 모짜르트 당대엔 귀족의 서클이나 부르즈와(bourgeois) 계급에게 모두 프리메이슨 단에 대해 신비로운 것이라곤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와같은 견해는 프리메이슨이 오스트리아 당국에 의해 금지되고 박해를 받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어 대중의 의식 속에 사라져간 시기에 생겨난 것이었다.
모짜르트의 동료이자 프리메이슨의 일원인 프란츠 요셉 하이든은 <마적>을 격찬했을 뿐만 아니라 모짜르트가 만년에 빈곤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경제적인 도움을 준 것은 프리메이슨 단원인 친구 미하엘 푸흐베르크로부터였다. 결국, 프리메이슨은 모짜르트를 최후까지 보살펴 준 단체인 셈이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프리메이슨에 의한 독살설은 그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본다.
둘째로, 수은 중독설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켈너의 저서에 의한 것으로 모짜르트가 나쁜 여자와 관계해서 매독에 걸려 그 치료를 위해서 수은제의 승홍(承汞)을 복용하였는데, 이로 인한 중독으로 사망하였다는 것이다. 모짜르트의 말기 중상은 요독증(尿毒症)이며, 이것은 수은 중독증에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이 주장은 그가 여성 편력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지기는 하나 그것을 정확히 증명해 줄 근거가 빈약하다.
셋째, 병사설이다. 성 슈테판 대성당 사무국 사망자 대장에 의하면, 모짜르트는 급성속립진열(急性粟粒振熱)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1791년 12월 5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궁전악장 겸 작곡가 연령 35세. 병과 사망 종류 급성속립진열(急性粟粒振熱)."
모짜르트는 체질이 허약해 어릴 때부터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더구나 한창 성장할 시기에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을 3년 반이나 여행으로 보냄으로써 체질을 약화시켰던 것이 후일 그의 생명을 단축케 한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Ⅲ. 프리메이슨의 정체
1. 태동과 변천
프리메이슨은 초창기에는 자유 석공(石工)이라는 의미로 8세기부터 중세 11-14세기까지의 성과 신전을 건설하던 건축가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당시의 건축가들은 내부장식에도 조예가 깊었고 지위도 높은 처지였으나 영주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한편, 그들의 기술전승을 위해 '길드'(guild)라는 조합을 형성했다. 이 '길드'가 프리메이슨 발생의 시초가 되었으며 정식명칭은 '고대자유 정통석공조합'이었다.
한편, 프리메이슨이 아슈케나지(Ashkenazic)가 세계 지배를 위해 조직한 비밀결사라는 주장도 있는데(임종태, p. 146), 아슈케나지란 유대교로 개종한 하자르인(khazar)인들을 말한다(임종태, p. 14 ; 2010. 02. 17 add).
그들은 자신들만의 계급성과 기술보존을 위해 철저히 비밀을 지켰으며 비밀보장을 위해 그들의 회의실을 외부인에게 절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박애정신 즉 '형제애를 그 근본구조로 하는 이상적인 사회조직의 현실화'라는 목표제시 아래 공개되지 않고 있던 회의실을 개방했다. 이 회의실에는 기술전승에 필요한 콤파스와 직각자, 나무망치와 가위, 자와 지렛대, 지거선과 기포수준기, 흙손 등 9가지의 연장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 회의실은 귀족, 사상가, 문인들에게 개방되어 이곳의 출입여부가 18세기 유럽 사회의 명예와 관련되어질 만큼 사교계의 중심점으로 부상했다. 이후 프리메이슨 비밀결사는 유럽대륙 뿐만 아니라 미국, 아시아 등지까지 그 세력을 확장시켜 갔고 영국 황실가족, 지식인과 귀족들이 구성원의 핵심이 되었다.
이 단체에는 실제 석공, 건축기사가 아닌 이론석공자격으로 가톨릭 사제들이 입단하게 되는데, 초기에는 종교와는 무관하였으나 로마 가톨릭 내의 사탄숭배 비밀조직과 결합하여 마침내 사탄교의 전조로 변모해갔다.
2. 조직과 계급
1717년 영국에서 탄생한 근대적인 프리메이슨은 고대의 프리메이슨처럼 순수한 석공들의 조합이 아니었다. 영국 전역에 퍼져있던 프리메이슨은 대표적인 4개의 독립된 지부를 통일, 하나의 대지부를 조직했다. 16년 후인 1733년에는 1백 26개 지부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현재에는 전세계 164개국에 지부와 템풀이 있다.
사탄숭배교와 결합한 프리메이슨은 하나의 목적을 설정했다. 고대 프리메이슨들이 솔로몬 성전건축에 종사했다고 믿으며 다시 오는 솔로몬(적그리스도)을 기다리는 것과 솔로몬 성전 재건을 그들이 맡은바 임무라고 믿고 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조직적인 방안을 추진, 실행하고 있다. "솔로몬 성전재건을 위해 점진적으로 사회와 국가를 개혁하여 보편적이며 인도주의적인 세계정부를 건설한다." 따라서 프리메이슨은 3가지 구성요소를 갖고 있다. 첫째, 힘의 상징(권력)을 나타내는 사면 삼각형, 즉 고대 이집트의 피라밋 등을 그들의 심벌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둘째로 선악의 개념을 혼돈케하며 선의 차이점을 인정치 않도록 하는 등 가치관 정복을 통해 각종 그럴듯한 단체들을 암암리에 구성했다. 미국의 그림자 정부로 불리는 CFR(The Council on Foregin Relations, 국제외교관계위원회), 유럽의 보이지 않는 정부 빌터버거, 뉴에이지 운동 등. 셋째로 철저한 계급제를 만들어 프리메이슨 상호간의 차별을 두어 실질적인 핵심인물의 노출을 꺼리며 전 프리메이슨을 최고의 의식을 통해 지배하게 한다.
프리메이슨의 계급은 33단계가 있는데 1단계에 사제(엔터즈 프렌티스), 2단계에 직인(훼더 그랜드), 3단계에 숙련된 석공(마스터 메이슨)으로 이어져 33단계는 명예급으로 최고의 대감사장으로 부른다. 이 계급제는 절대적인 것이며 하위계급자는 상위계급자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한다. 하나의 계급을 획득하기 위해선 여러가지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의식에 참가해야 하는데 4단계부터는 피로써 언약하게 되어 있다.
프리메이슨의 입회의식 후 탈퇴할 경우는 살해를 당하고 프리메이슨이 아니고서는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될 수 없으며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됨은 사탄과 영매로써 접촉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3. 회원들
프리메이슨의 회원들로서는 미합중국 탄생을 주도한 조지 워싱톤을 비롯해 토마스 제퍼슨, 벤자민 프랭클린, 존 아담스, 알렉산더 해밀턴, 헨리 노크스, 에드먼드 랜들 등의 수뇌들과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던 루소와 혁명의 주요 지도자였던 미라보 그리고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와 몽테스키외, 낭만주의를 일으킨 괴테나 바이런, 모짜르트 등이 프리메이슨 조직의 일원들이었으며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의 상당 수도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다고 한다.
한편, 몰몬교와 여호와의 증인 창시자들도 프리메이슨이었는데, 몰몬교의 예배의식이 프리메이슨의 예배의식과 비슷한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닌 것이다.
4. 활동과 영향
전 프랑스 프리메이슨의 대감독이자 마르티닉 성 삐에르란 도시의 의원인 루이 삐에르는 "프리메이슨은 인권표명, 교회와 국가의 분리, 사형금지, 서인도의 승인, 미국의 탄생, 프랑스 대혁명 등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또한 오니쓰까 이소이찌는 프리메이슨은 세계통일정부 수립의 모델 케이스로 미국합중국 탄생을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유럽 프리메이슨을 대표하는 거부 유대인 로스챠일드 가문이 독립자금의 출처가 되었으며 조지 워싱톤, 토마스 제퍼슨, 벤자민 프랭클린, 존 아담스, 알렉산더 해밀턴, 헨리 노크스, 에드먼드 랜들 등 미합중국의 수뇌들이 모두 프리메이슨이었다. 특히 1793년 연방의회 의사당 기공식에 조지 위싱톤 대통령이 프리메이슨의 의식용 예복을 착용했으며 가슴에는 프리메이슨의 표장을 달고 있었다. 주변의 주요인사들도 모두 프리메이슨 예복과 표장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일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일반인들에게 생각되겠지만 '조지 워싱턴 프리메이슨 기념관'에 가면 사실여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조지 위싱톤이프리메이슨이었던 것을 기념하여 1923년에 건설된 이 건물 안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보존되어 있고 프리메이슨이었던 역대 대통령의 이름도 열거되어 있다. 케네디 닉슨을 비록 수명의 대통령만이 프리메이슨이 아니었다. 미국 국새(國璽)에 그려져 있는 독수리와 1달러 짜리 지폐에 새겨진 피라밋과 '모든 것을 보는 신의 눈'은 일루미나티(Illuminati)의 영향에 기인한다."
한편, 프랑스 대혁명의 핵심세력도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던 루소는 일루미나티의 일원이었으며 혁명의 주요 지도자였던 미라보 역시 일루미나티의 일원이었다. 혁명의 슬로건이었던 '자유 평등 박애'는 프리메이슨이 표방하는 신조였다.
희망의 S.O.S(S.O.S ESPOIR)의 한 담당자는 "프랑스 대혁명의 기치는 '백성에게 자유를'이었고 그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로 각 개인이 하나의 독립체로서 '완전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 이 혁명을 통해 '자유 평등 박애'의 용어가 각 관공건물 위에 새겨졌고 화폐 위에 새겨졌다."
1790년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 및 평등의 권리를 가진다"라는 구절로 전문이 시작되는 인류 역사상 불후의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 인권선언문을 새겨놓은 기념비를 보면 당시, 일루미나티를 중심으로한 프리메이슨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비석의 왼편 위쪽에서 쇠사슬을 자르는 여신은 프랑스를 상징하며 우측의 천사는 법의 화신이라 불리는데 그 천사의 오른손 홀 끝에 빛나고 있는 것이 미국의 1달러 지폐에 인쇄된 '모든 것을 보는 눈'으로 일루미나티의 상징이다. 미국에서는 '모든 것을 보는 신'이라고 했지만 프랑스에서는 '이성의 눈'이라고 부름으로써 그 빛을 받으면 지금까지 있었던 오류의 암운이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Ⅳ. 모짜르트와 프리메이슨의 관계
모짜르트는 1784년 12월 14일에 자유주의적 우애조직인 프리메이슨에 가입하게 되는데, 그가 1791년에 지은 오페라 <마적>에는 이 단체의 심벌과 이 교단의 특유한 의식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차 있다. 이 작품에서 프리메이슨의 상징주의와 도덕성이 본질적인 주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보편적 견해가 되어있다.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중 한 사람인 브루노 발터는 이 <마적>의 지극히 높은 예술성을 논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의 짧았던 생애의 마지막 수년간에 그가 뚜렷이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그의 사랑으로 가득 찬마음과 프리메이슨 결사의 인간성과 형제애의 교의(敎義)가 차츰 증대되면서 일치된 점이었다. 그러한 무의식적인 충동과 앞서 말한 윤리적인 경향의 종합으로부터 「마적」속에서 예술적 표현을 발견한 마음의 세계가 생겨난 것이다."
<마적>의 리브렛토(libretto)의 재료는 크리스토프 마틴 빌란트의 3권짜리 동화집 <마적 집>과 토비아스 폰 게블러의 희곡 <타모스 왕>그리고 1731년 간행된 장 테라송 신부가 쓴 고대 이집트에 관한 소설 <세토스>이다. 이 가운데 <세토스>는 수개 국어로 번역되어 특히 프리메이슨의 작가들에 의해 많이 이용되었다. 대본은 쉬카네더(Schikaneder)가 썼지만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리브렛토엔 모짜르트이 의견이 많이 수용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리브렛토는 모짜르트의 합작품이라 할만 했다. 리브렛토의 초판 타이틀 페이지에는 프리메이슨적 도안들이 공공연히 인쇄되어 있다.
<마적>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고대 이집트의 이시스와 오시리스 신전부근이며, 등장인물 가운데는 오시리스 신들에게 봉사하는 고승(高僧) 자라스트로(Saratro)와 고승들, 밤의 세계를 지배하는 여왕, 밤의 여왕의 딸 파미나 등이 있는데 이는 프리메이슨을 암시하는 대목들이다. <마적>가운데 사제들이 교회 안으로 행진해 들어오는 장면(March of the Priests)에서 모짜르트는 가장 엄숙하고 장엄한 음악을 사용하고 있다. '거대한 교회 안 어둠 속에서 촛불이 켜져 있고 모든 사제들이 고대 이집트인들이 입었던 복장을 하고서 천천히 행진해 들어온다. 그리고 그곳에는 고귀하고 현명한 고승 자라스트로가 앉아 있다.' 교회 안에 앉아 있는 고귀하고 현명한 고승은 아마도 프리메이슨의 이상 가운데 하나인 지혜를 의인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적> 외에 모짜르트가 빈의 프리메이슨을 위해 지은 곡은 <결사원의 여행>, <프리메이슨의 기쁨>, <프리메이슨을 위한 장송의 음악>, <우리들의 기쁨을 소리높이 고함> 등이 있다.
한편, 모짜르트의 작품인 「레퀴엠」도 프리메이슨 교도들이 주장하는 범신론적 신인 "우주의 위 대한 건축가'를 위한 것인지 혹은 그리스도 만왕의 왕을 위한 작품인지는 분명치 않다.
Ⅴ. 나가는 말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모짜르트의 음악 가운데는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의 사상이 담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찬양하고 동경하는 음악이 있다.
프리메이슨은 단순한 우애조직이 아니라 종교단체이다. 프리메이슨 교도들은 어떤 특정의 정치, 경제 혹은 종교적인 강령을 마음에 품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눈가림에 불과하다. 사탄숭배교와 결합한 프리메이슨은 고대 프리메이슨들이 솔로몬 성전건축에 종사했다고 믿으며 다시 오는 솔로몬[적그리스도]을 기다리는 것과 솔로몬 성전 재건을 그들이 맡은바 임무라고 믿고 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조직적인 방안을 추진, 실행하고 있다. 즉 '솔로몬 성전재건을 위해 점진적으로 사회와 국가를 개혁하여 보편적이며 인도주의적인 세계정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프리메이슨은 3가지 구성요소를 갖고 있다. 첫째, 힘의 상징(권력)을 나타내는 사면 삼각형, 즉 고대 이집트의 피라밋 등을 그들의 심벌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둘째로 선악의 개념을 혼돈케하며 선의 차이점을 인정치 않도록 하는 등 가치관 정복을 통해 각종 그럴듯한 단체들을 암암리에 구성했다. 미국의 그림자 정부로 불리는 CFR(국제외교관계위원회), 유럽의 보이지 않는 정부 빌터버거, 뉴에이지 운동 등. 셋째로 철저한 계급제를 만들어 프리메이슨 상호간의 차별을 두어 실질적인 핵심인물의 노출을 꺼리며 전 프리메이슨을 최고의 의식을 통해 지배하게 한다.
프리메이슨이 말하는 신의 정체는 루시퍼이다. 프리메이슨의 마리 P. 홀이 쓴 「프리메이슨의 잃어버린 열쇠」라는 책에는 "프리메이슨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바르게 아는 것이다. 그때에 루시펠[루시퍼]의 소용돌이치는 에너지는 그의 것이 된다."고 루시퍼 숭배사상을 담고 있다.
프리메이슨의 입회의식 후 탈퇴할 경우는 살해를 당하고 프리메이슨이 아니고서는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될 수 없으며 사탄의 교회 일원이 됨은 사탄과 영매로써 접촉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프리메이슨은 사탄을 숭배하는 종교단체인 것이다.
이 단체에 가입한 모짜르트는 그의 오페라 작품 <마적>에서 그가 회원으로 있는 단체의 심벌과 이 교단의 특유한 의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모짜르트의 프리메이슨에 대한 열렬한 헌신의 감정에서 샘솟는 것으로 그 비밀결사의식을 교묘하게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마적> 뿐만 아니라 그가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레퀴엠>이나 그가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1784년 12월 14일 이후에 지은 곡의 상당수도 프리메이슨 사상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그의 음악을 아무런 분별없이 '온 우주에서 모짜르트의 음악은 불멸의 것으로 남아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켜 줄만한 유산'으로만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은 모짜르트 음악에 대한 주의를 환기(換起)시켜야 할 것이다.
김정환. 「클래식은 내친구 - 음악보다 더 재미있는 음악이야기 Ⅰ」 서울: 웅진출판사, 1996.
신규인. 「성경으로보는 서양미술사」 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2007.
신동헌. 「음악가를 알면 클래식이 들린다 - 작곡가 편」 서울: 서울미디어, 1995.
헌. 「재미있는 클래식 길라잡이」 서울: 서울미디어, 1995.
이덕희. 「세기의 걸작 오페라를 찾아서」 서울: 예하, 1994.
희. 「음악가의 만년과 죽음」 서울: 예하, 1993.
이정헌. 「은빛원반 속에 흐르는 명선율을 찾아서」 서울: 세광음악출판사, 1995.
임종태. 「경제 묵시록 탐욕의 종말 :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비밀」 서울: 도서출판 다른우리, 2009.
임현경. 「고전음악, 어떻게 들을 것인가」 서울: 도서출판 예솔, 1994.
제인 스튜어트 스미스, 베티 칼슨. 「음악의 선물」김성혜, 김혜송 역. 서울: 서울서적, 1992.
조윤용. 「이야기 음악감상」 서울: 한성음악출판사, 1993.
패트릭 카바노프. 「위대한 음악가들의 영적생활」 차동재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5.
「클래식 음악여행」 아름출판사 편집부 편. 서울: 아름출판사, 1993.
<정기간행물>
김왕기. "프리메이슨을 아십니까?." 「낮은 울타리」, pp. 62-64.
조경대. "모짜르트 교향곡 제40번 g단조 k. 550." 「활천」 1998년 6월호, pp. 66-68.
함태경. "뉴에이지 운동을 태동케 한 프리메이슨의 정체." 「신앙계」 1992년 7월호, pp. 13-18, 62-67
"신록의 바람이 나부끼는 아름다운 소리." 「프리즘」 1997년 6월호, p.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