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여러 아이들과 모여서
함께 재미있는 놀이와 공부를 했지요.
내일 시험이 있다고, 시험공부를
해야한다고들 그래요.
만약 시험에서 0점을 받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고 물으니.. 다들 큰 일 난다고
그러는 거에요.
부모로부터 육체적 체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아이도 있고,
오빠나 친인척으로부터 엄청 혼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아이도 있어요.
물론 엄마한테 혼난다고 말한 아이도
있고요.
혼나는 게 육체적 체벌까지 생각한
것은 아닌 듯 했지만, 매우 끔찍한
무엇인가를 상상하는 듯 했지요.
과연 시험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초등 2학년에게 이런 시험을 보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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뼘으로 잴 수 있는 길이로 가장 알맞은
것을 고르는 문제인데요..
물론 여기에는 가장 이라는 말이 포인트가
되겠죠. 하지만 굉장히 애매합니다.
한 뼘보다 작은 것도 뼘으로 재보고,
이만큼 부족하다는 측량을 할 수 있는 것이고요..
냉장고의 높이 또한 냉장고의 크기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작은 사이즈는 뼘으로 재기에
충분하지요. 물론 큰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책 상의 긴쪽의 길이 또한 책상마다
재각각이니.. 냉장고 높이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고요.. 자동차의 길이도 뼘으로
재기에 알맞은 사이즈이지요.
아무튼 이런 수학 문제는 정말 아리송..
이 문제의 포인트는 아는 사람인가 봅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고요. 어른인 저도
애매한 추측을 해야만 하는 문제라니..
처음만난 사람이지만 많이 들어서
아는 사람일 수가 있어요.
사촌일수도 있고, 친척일 수도 있고,
유명한 사람일 수도 있고요..
아무튼 문제의 의도를 모르겠어요.
왜 틀렸는지 모르겠다며 어떻게 써야
하느냐고 저에게 들고온 문제이에요.
이 문제 때문에 이삭이 시험지를
들여다 본 계기가 되었지요.
왜 틀린 것 같느냐고 물으니..
간단히 쓰라고 했는데, 문장을 많이
써서 그런거 같다고 해요.
항상에 엑스하신걸 보면 소연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모습이란 꼭 외모만이 아니고 행동으로
드러난 결과를 표현하기도 하지요.
'공부하는 모습'과 같이요..
외모를 특정하지 않아서 틀린 것 같기도 하고.
아이가 왜 틀렸는지 선생님께 듣지도
못하고, 오답노트를 숙제로 내주시니..
이것은 고스란히 부모의 숙제가 되는 것이죠.
학교 --> 부모 --> 사교육..
이런 트라이앵글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구조가 아닌가 싶어요.
아이들의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고,
정답맞추기를 죽기살기로 하고 있는 것이죠.
답은 1번일 것이라고 추측이 돼요.
하지만 많은 문학가들은 사실 그대로가
아닌 자신의 생각을 많이 지어내서
의미를 부여하고, 상상력을 발휘하지요.
소설이란 다 지어낸 이야기이니까요.
자신이 겪은 일을 떠올려 글을 쓰는 것..
대부분 소설가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것에 살일 붙이고, 상상을 하면서
더 풍성하게 지어내는 것이죠.
적어도 저런 식의 보기에 제시된 대로
주의를 해가며 글을 써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글은 자유자재로 써야지..
저런 이상한 주의사항을 주기 때문에
글을 쓰고 싶지 않은 것이죠.
사람들이 한 말을 큰 따옴표를 사용한
다는 것 또한 꼭 맞는 말은 아니에요.
직접 인용할 때만 그런 것이니까요.
정말 이런 시험문제로 아이들의 생각에
자질구레한 틀을 들이 대면,
글을 쓰고자하는 동기가
전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제목 정하는 것까지 이렇게 정해 주다니..
정말 놀라운 교육입니다. 그냥 하고 싶은
제목을 붙이면 되는 것이니까요.
온점을 찍든 말든, 한 문장으로 하든
한 단어로 하든, 저자의 이름을 넣든,
중요한 내용을 포함하든 그저 재미있는
이름을 붙이든.. 전혀 상관없는 일이죠.
그 어디에 정답이 있단 말인가요?
단테의 신곡은 원래
'단테 일리기에리의 코메디'입니다.
저자의 이름과 글의 형식을 넣은 것이죠.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죠.
초등 1, 2학년까지는 시험이 없는
학교들이 있다던데 정말 올바른
방침이라고 생각해요. 시설이 좋은
학교 보다는 교육 철학이 올바른
학교가 좋은 학교이겠지요.
이런 국어 시험 점수를 토대로
아이들의 이해력을 측정합니다.
우리 아이는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좌절하고 불안해 하는 부모를 봅니다.
엄마가 하는 말귀를 잘 알아 듣는다면
이해력이 부족한 것은 아닐거에요.
오히려 상상력이 좋은 아이일 수 있지요.
이 아이들은 아직도 상상력이 거세되지
않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