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고난과 함께 죽으시고
일요일에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
그리고 그 시간들을 생각한다.
요한은 예수님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끝까지 지켜보고 장례후까지 예수님 곁에서 떠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3일뒤 다시 살아나실걸 알고 시간을 보며 희망적으로 기다린게 아니다.
그저 예수님과 함께한 시간동안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했기때문이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죽음은 요한에게도 고난이었다.
이 부분은 성경을 읽다 발견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슬픈기색을 하며 우리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분이라고 기대했는데 그 분이 죽고 돌아가신지도 벌써 3일이나 되었다고 하며 바로 앞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님의 말씀이 "너희는 어리석고, 예언자들이 말한 것을 더디 믿는구나, 그리스도가 이 모든 고난을 받고 그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제자들에게 인자는 삼 일뒤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분명 말씀하셨는데 사람은 당장의 현실에 눈이 어두워 그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예수님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직업과 가족을 두고 예수님 한분만 믿고 정처없는 길을 나서고 그의 미래가 예수님에 걸려있었는데 예수님이 힘없이 저항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십자가에 달리시고 옆구리가 찔리시고 그렇게 가시는 걸 보았다.
시련과 고난, 또는 외로움,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 인간의 모습이다.
우리는 이럴 때 포기해버리고 낙담하고 실망하여 떠나버리기도 한다.
미래를 알고 있던 것이 아니었어도 요한은 그 자리에 남아 지킨다. 그랬을 때 요한은 3일 뒤 일요일에 예수님의 놀라운 부활을 보게 된다.
사라졌던 희망과 미래, 외로움만 가득한 실족된 마음에 너무도 큰 축복을 보게 된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중에 요한이 있게 된다.
우리도 미래를 알 수 없다. 그리고 때로는 외롭고 힘이 든다. 희망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이 우리에겐 예수님이 돌아가신 금요일과 부활하신 일요일의 사이 일지도 모른다.
우린 그 중간의 날에 알지못하는 미래의 큰 역사함과 축복을 보지못한채 점점 더 주님과 멀어지거나 낙담하게 되는걸지도 모른다.
새벽기도를 오랜만에 나가 기도하던 중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하지 않았던 마음이 죄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미래에 우리에게 있을 큰 선물이나 축복을 보여주지 않아도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인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